구들
삭풍이 몰아치는 긴 겨울밤 아랫목에 얼어붙은 손발을 녹이며 동치미에 고구마를 먹어 보았는가?
   
 

삭풍이 몰아치는 긴 겨울밤 아랫목에 얼어붙은 손발을 녹이며 동치미에 고구마를 먹어 보았는가?
훈훈한 온기가 온몸을 휘감을 때면 이내 스르르 잠에 젖어들어본 기억이 있는가...

미국을 광란의 회오리로 몰아가던 금융위기가 그때 더이상의 부동산 신화는 없음을 자인하며 미루고 미루던 시골로의 이사를 감행했다. 갑상선이 좋질않아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직접 성주를 하게된 것이다 경제적 여건과 지리적 조건등을 감안하여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기를 몇달째 끙끙거리는 시간이었다. 이미 지어놓은 아파트를 구입하는 건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정도의 고민이랄까. 집을 한번 지으면 성주하는 것이요 두번지으면 득도한다고 했던가. 암튼 내 집을 지었다. 내장을 황토벽돌로 하는 욕심도 부렸지만 가장 욕심낸건 사랑방이자 구들방이었다.

구들.
이집을 짖기전에 한옥마을 총무로서 한옥을 짖기위해 많은 공력을 들였지만 여러가지 사정과 이유로 포기하고, 이 집을 지으며 그전에 경험하고 두루 섭렵했던 구들방 작업을 하게됐다. 구들의 종류는 수없이 많다. 겨우내 긴 동안거를 하며 수도에 정진하던 스님들 산사의 방부터, 왕실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는 구들. 산림이 주요한 자원이자 화폐수단이던 시절 학교가 파하면 망태나 지게를 지고 갈쿠리로 땔감을 지고 서산마루에 시들어지는 스산한 기억의 도착지는 부삭이나 광방옆 칫간창고였다.

구들방의 핵심은 고래다.
서민들이 주로 사용한 방식은 허튼고래이며 양반집마저도 허튼고래를 주로 사용했다. 이는 구들장이라는 고래위 즉 상판으로 사용하는 떡돌을 쉽게 구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구한들 일정한 규격으로 정열하기까지는 공정상 버거운 것이었다. 그래서 자본의 집중과 인력의 확충이 용이한 절이나 왕실에서나마 특이한 줄고래를 하였고 그외는 허튼고래를 주로 사용한 것이다. 허튼고래는 말 그대로 대충 대충 대충 띠엄띠엄 적당히 축돌을 놓는 것이고 그 위에 구들돌을 올려놓는 방식이다. 쉬운 방식이나 몇년이 지나면 많은 사용으로 인해 구들돌이 놀아버리는 상황이 발생할수 있기에 이런 방식이 아니고 줄고래를 놓으려 했다. 인부들에게 어쩌고 저쩌고 해서 줄고래를 하는 방식과 원리를 설명하고 퇴근해서 보니 허튼고래로 고래와 구들돌까지 얼추 다 해버린 것이다.

이런...
지친 육신과 가늘어진 신경은 이걸 다시 재구성하기에는 체력이 허락하지 않았다. 온 식들이 달라붙어 마지막 미장으로나마 허튼고래의 아쉬움을 포장하려 했다. 그러나 물과 몇달이 지나지 않아 매케한 연기가 온방을 휘감고 방바닥과 맞다은 한지는 시커먼 연기로 채색되며 빨치산 비트마냥 변해갔다.

이런 황당함이란...
그 이듬해 구들방을 다 뜯어냈다. 새롭게 만드는것보다 바꾸는거라는...  혁명보다 개혁이 어렵고 혁명보다 이를 지키고 건강하게 유지.발전시키는건 더욱 더 어려운 거라는것처럼 구들을 보수하다 다 들어내버렸다. 그리고 당초 계획한데로 줄고래와 웃목에 개자리를 일미터 깊이로 만들고 굴뚝 개자리까지 만들고, 화구에 열 효율성을 극대화하기위해 화덕에서 두자길이 안쪽에다 화심을 만들고 줄고래의 각도와 †이 등을 면밀히 계산하며 만들었다. 잘˜ダ?짚을 잘게 썰어서 황토흙과 잘 버무려 방바닥의 균열을 방지하는 마무리는 딸의 열정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초저녁의 군불과 그 열기가 하루를 넘어 이틀은 충분히 뜨신 방의 온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일때의 안온함이란... 얼마전 경상도 깽깽이가 조금 시간이 지난후에 육십령 고개 언저리에 집을 지을건데 구들을 만들어 줄 수 있는가를 물었다. 아 허튼고래의 학습과 줄고래로의 이행까지의 황망함과 뻐근함이 잠시 교차했다.

그래 해주마...
너에 지친 육신을 편하게 해주는게 구들이라면 내 멀다하지 않고 달려가 해주마 했다. 안집 밭자락의 아카시아나무를 벌목한다는 말에 한달음에 달려가 트럭으로 ‘p대의 땔감을 해온 지금 성급하게 군불에 등짝을 지지고 군불에 삼겹살을 구워 늘 그리운 벗들과 옹기종기 나눠먹는 긴 겨울의 풍경이 되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