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감, 그리고 눈물

 임성주(일로 농협 근무, 사회연대네트워크 회원)

   
 

아파트에서 탈출하려는 오랜 기간의 몸부림이 4년 전에 마침내 성공하였다. 아내의 투병과 그리고 나 또한 유사한 병증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일을 벌인 것이다. 여러 가지 오류와 용감무식(?)의 결과로, 등 따시고 두 발 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살림집을 지으며 제일 욕심 부린 곳이 구들방이고 둘째가 곶감 말리는 줄을 거는 거였다.

곶감... 어린 시절 아버지 손잡고 문중 시제에 가면 어른들이 요놈 왔구나 하시며 제일 먼저 손에 쥐어준 것이 곶감이었다. 때론 할아버지가 때론 가끔 보았던 할머니가...

쫀득하면서 입안에 감도는 담백하면서도 달콤한...
가끔 이에 끼는 번거로움도 달콤함을 능가하진 않았다.

그걸 몇 년째 만든다. 작년까지는 과도로 대봉 하나하나를 사과 깎듯이 해서 처마에 말렸다. 어떤 해는 너무 빨리 해서 초파리의 침략과 낙과의 처참한 결과를 지켜보아야만 했다. 엄마 집에 있던 왕대봉 70여개를 정성스레 매달았으나 오뉴월에 소거시기 처져 결국 무화과 나무 밑에 장례를 치를 때는 ‘내 입에 들어가는 게 몇 개라고 이 짓을 해?’ 하기도 했다.

   
 

하지만 로컬푸드에 진열되는 대봉과 이런저런 사유와 대봉값이 작년의 3분의 1로 추락하면서 갈등의 능선을 넘어설 무렵에 남태형이 “동상, 집에 와서 감 좀 안 따갈랑가?”라고 하면서 나이 고민이 다시 시작되었다.

먼저 하나밖에 없는 형과 함께 감 오백여 개를 땄다. 외갓집 옥반동에 사는 성익이 동생이 ‘이런 날씨에는 건조기 45도 정도에서 건조, 하루는 문을 열고 거풍, 또 하루를 건조시킨 후 매달아 두면 좋은 곶감이 된다’고 조언도 해주었다.

바람과 찬 공기를 머금은 곶감이 절반은 엄마집에 나머지 절반은 우리집에 왔다. 노릇해지면서 검붉은 색으로 변해갈 때, 함양에 사는 깽깽이가 곶감 농사 실패로 자살한 농민이야기를 해 주었다. 곶감 먹기가 부담스러워졌다. 나만의 만족으로 곶감을 만들 때, 생존으로 생명을 가꾸는 이의 처지를 간과한 것이다.

삼호중공업 해고자이자 과거 민노당 지역 창당의 멤버인 현주 동생이 벗들과 나눌 곶감을 만들고 싶다며 안달이다.

그래 몽탄에 가자.
감 육백 개를 따왔다.

 

   
 

가지에 달려 있는 감들을 서서 따기 하며 몇 발자욱 옮기지 않았는데 벌써 내 자동차는 대봉향과 감으로 하나 가득이 되었다.


외국으로 이민 갔다가 엄마 품으로 되돌아와 강진에서 약국 하는 동생, 사회보험에 있는 송춘이 형, 그리고 큰 딸 명희랑 함께 엄마 집에서 감자 깎는 칼로 눈 깜짝할 사이에 끝장을 봤다. 오지게 깎았다. 보름의 숙성을 통해 인천으로 목포로 강진으로 곶감은 이동했다.

EG테크 싸움으로 구속된 후배가 출감했다. 삼호 동생은 “형님, 형수 동생 것이 없네요. 어째 함 해 봅시다”하며 또 나에게 곳감을 더 만들자고 보챈다. 하지만 이게 장난이 아니다. 받는 이는 꿀꺽 하면 되지만, 그걸 만들려면 남태형 눈치 보며 말해야지, 곶감 말리는 거 챙기고 걸어야지, 시간 나면 주물러주고, 초파리 끓으면 파리끈끈이 걸어두기를 보름하며 세 차례의 곶감 여행을 해야 한다.

집 사람은 내년에도 할거냐고 은근히 묻는다. 현주 동생은 “당연하지, 나누어야지...”

나누기 위해 손을 내밀 때는 짧지만 그 준비와 과정은 결코 만만치 않다.

대학 시절 철학을 전공했다는 이유로 내게 철학이 무어냐고 재학 시절엔 후배가, 또 지금도 질문을 받는다. 그러면 ‘먹을 것을 집어 들고 입에 넣고, 배설하고, 보이는 과정과 보이지 않는 운동을 일관되게 이해하고 설명케 하는 게 철학의 출발이다’라고 답해준다.

나누는 거...
우리는 나눌 때 내걸 남기고 나눈다.
나도 그렇다.


몇 년 전 선물로 들어온 홍어를 지금은 나의 가슴과 등에 칼을 꽂는 이에게 나눌 때 아내와 실랑이를 벌인 적이 있다. 조금 주네 많이 주네 하며...

이제 로컬푸드 매장에 남태형의 대봉은 감 말랭이로 나온다. 풍성한 감은 말라버린 말랭이로.
그러면서 “동생, 내 찰대봉 맛이 어땠어?” 하는 말씀에 눈물이 났다.
얼른 식육 코너에서 생기하고 양촌리 커피세트를 쥐어드리며 등을 떠밀어버렸다.

나의 나눔과 남태형의 나눔은 어떤 걸까?
가진 걸 나누지만 버리는 나눔, 욕심과 계산이 없는 나눔은
아직도 앙상한 가지에 까치밥으로 남아있을 붉은 대봉을 보면 마음이 아린다.

내년을 기약하며 주인의 발자국 소리에 곡식은 자란다는 말처럼
지금도 가지치기와 퇴비를 감나무에게 주며 감사한다는 남태형 말이 가슴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