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틀콕에서 얻은 교훈
진료실에서 바라본 세상 <4>
   
 

 

배드민턴은 참 좋은 운동이다. 나는 만성질환, 비만과 운동부족을 고민하는 환자들에게 종종 배드민턴을 권유한다. 배드민턴은 심장과 폐의 기능을 향상시켜주는 유산소 운동이고 또 체지방 감소 효과가 매우 큰 운동이기 때문이다. 

상당한 운동량과 다양한 기술, 승리의 쾌감, 연습 중 오고 가는 다정한 대화, 운동 후 들이키는 시원한 맥주 한잔. 배드민턴은 참 매력 있는 운동이다. 이런 매력 때문에 나도 8년 동안 주말이면 어김없이 배드민턴클럽을 찾고 있다.

6.1 x 13.4m 크기의 코트에서 단식경기를 한다고 치자. 31점 한게임만 한다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프마라톤을 뛴 양 녹초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생활체육에서는 단식경기가 없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 동호인이라 하더라도 소화할 수 있는 운동량이 아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동호인대회는 복식경기이다. 

1년 동안 열리는 동호인대회는 열 개가 넘는다. 동호회 자체 대회, 구 대회, 시 대회, 전국 대회, 중장년 대회, 부부 대회 등 셀 수도 없이 많다. 그것도 봄가을 2회씩 치르다 보니 매니아 동호인들은 거의 체육관에서 산다고 봐도된다.  

배드민턴 세계에 발을 내민 사람들은 다른 운동으로 바꾸는 경우가 드물다. 그 이유는 다른 어떤 운동보다 많은 운동량과 다양한 기술, 사람들과의 교류. 그리고 60대가 되어서도 계속할 수 있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스키나 스노보드, 축구나 족구같이 다양한 운동을 경험한 이들도 나중에 배드민턴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운동의 마지막 정착지인 셈이다.

느닷없이 배드민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각 클럽이 대회를 운영하는 방식에서 우리가 어느 사회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힌트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클럽회비는 시나 구마다 또는 생활 수준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대략 두 가지 운영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비용이 많이 드는 클럽과 적게 드는 클럽.

얼핏 생각하면 비용이 적은 클럽이 당연히 좋을 수 있다. 먹고살기 힘든 세상에 비싼 클럽회비를 내며 운동하면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회비가 저렴한(약 월 1만 원) 클럽을 들여다보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회비가 많은 클럽은 셔틀콕을 공동으로 구매하지만 그렇지 않은 클럽은 자신의 콕을 직접 사서 사용해야 한다. 보통 2대 2 복식경기를 하기 때문에 한 사람씩 콕 4개를 코트 중앙라인에 세워놓는데 총 네 개의 콕 중에서 한 경기당 평균 2개 정도를 사용하고 경기 종료 후 이긴 팀은 남아있는 콕 2개를 가져간다. 

일종의 승리 전리품으로 일명 ‘콕 따먹기’라고 한다. 간혹 ‘식사 내기’라도 할라치면 경기는 살벌하다. 애매한 상황에서 ‘in이냐 out이냐’로 때론 고성도 오고 간다. 

그러다 보니 회비가 저렴한 클럽에서는 파트너에 민감하다. 자기와 한 팀을 이루는 파트너가 실력이 좋은 사람이길 바란다. 잘 치는 동호인은 이쪽저쪽 초청을 받게 되고 실력이 모자란 사람은 찬밥 신세일 경우가 많다. 처음에 클럽에 가입해서 이런 홀대를 견뎌내지 못하는 초보자는 배드민턴이 비인간적이고 치사한 운동이란 험담하고 좌절하며 쉽게 운동을 접게 된다.

반면 좀 더 비싼 회비(약 월 4만 원)가 책정된 클럽의 분위기는 매우 훈훈하다. 비슷한 실력의 사람들끼리 경기를 해야 자기 실력이 최고로 발휘되고 또 운동량도 많아진다. 이기고 싶기 때문에 잘 치는 파트너를 원하는 것은 어디서나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그렇게 민감하게 굴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경기에 진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콕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력이 좋은 선배들은 후배들이나 초보회원들과 기꺼이 한 경기 붙어주는 아량을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하루도 안 빠지고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은 더욱더 이득이다. 아무리 콕을 사용해도 콕은 언제나 떨어지지 않는다. 회비만 내고 이런저런 이유로 운동에 빠지는 회원 덕분이다. 

최근 새누리당의 정책통인 유승민의원이 원내대표에 당선되면서 김무성 당 대표와 함께 ‘증세 없는 복지는 국민에 대한 거짓말’이라며 청와대에 각을 세우고 있다.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선을 둘러싼 정책 혼선과 연말정산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여기에 비박계의 정치적 계산이 결부되면서 집권 보수여당에서부터 ‘저 부담-저 복지’의 복지시스템을 ‘중 부담-중 복지’로 변화시키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진보정치가 통합의 회오리 속에 휘청거리고 있는 사이 진보의 아이템인 복지의 주도권을 보수들이 쥐어 잡고 마구 주무르고 있다.

닭 쫓던 개가 넋 없이 지붕만 쳐다보는 격이다. 

한국사회가 ‘저 부담-저 복지’의 체계라 하지만 따져보면 ‘고 부담-저 복지’ 구조다. 국민건강보험만 보더라도 한 가구당 평균 7만 7천 원 가량의 건강보험료를 납부하고 있지만, 민간의료보험 지출은 20만 선으로 건강보험료의 세배에 이른다. 건강보험은 그나마 소득에 비례한 부담이지만 민간의료보험은 소득과 계층에 차별을 두지 않고 부과하기 때문에 그만큼 저소득층 가계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어디 문제가 건강보험뿐인가? 세금과 사회보험료 부담이 OECD 평균의 절반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 우리 국민들은 자신과 가족의 안전과 생명, 미래를 위해 그보다 두 배가 넘는 비용을 쏟아붓고 있다. 사적으로 삶의 안전망을 해결하려는 이런 노력을 ‘능력에 따라 부담하고 필요에 따라 혜택받는’ 세금과 공적 사회보험에 지출한다면 더 적은 부담으로 더 많은 복지를 수혜받을 수 있는데도 말이다. 

이미 국민들은 고부담 체계 속에 힘든 삶을 이어가고 있다. 자신이 낸 세금과 사회보험료가 다시 쓰일 수 있다는 체험과 신뢰. 확실한 복지로드맵, 지출구조개혁과 동반된 고소득층에 대한 부자증세, 기업의 법인세 실효율 상승 등의 비전이 제시되고 변화가 이루어진다면 우리 국민들은 기꺼이 자신의 지갑을 열게 될 것이다. 

열심히 운동합시다. 단 셔틀콕은 단체로 구매합시다.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

열심히 증세운동합시다. 단 능력과 소득에 따라 세금을 더 내도록 합시다. 모두가 행복하고 안전한 공동체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