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노동자가 고국으로 돌아간 까닭은?
진료실에서 바라본 세상 <3>

 

   
 

 

어느 날 한 이주노동자가 괴로운 듯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는 진료실로 들어왔다.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동료로 보이는 이주노동자와 한국인 관리자도 뒤따라 들어왔다. 

 

“어디가 불편하신가요?”

“이 친구가 작업장에서 페트병에 있는 물을 마셨는데 그걸 먹고 머리가 아프고 배도 아프다네요.”

말이 통하지 않는 환자와는 바디 랭귀지로, 한국인 관리자와는 대화로 진료를 이어갔다. 

“페트병에 약품이 들어갔나요?”

“네. 거기에서 화학약품 냄새가 나더라고요. 이 친구는 같이 일하는 한국 근로자가 그 페트병에 이물질을 넣었다며 잡아달라네요." 

“네 일단 진료부터 할게요”

 

일단 의식이 있고 구토를 하지 않는 것으로 볼 때 독성이 심한 약품은 아닌 것으로 추정되었다. 

 

“전 환자 치료하는 사람이니까 범인은 못 잡아드리고요. 작업장 CCTV부터 확인해 보시는 게 좋겠어요. 응급실에서 위세척을 받으셔야 하는데 지금 곧바로 가셔도 되고요. 심한 독성은 없는 것 같으니 제가 처방해드리는 약 드시고 증상변화를 본 후에 가셔도 되겠어요.”

 

파키스탄에서 왔다는 이 이주노동자는 무척이나 화난 표정으로 나의 말에도 반신반의 경계의 눈빛을 보이며 응급실 진료비 걱정을 한참 하며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다. 

 

“네 그럼 잠시 밖에서 생각해보고 상의도 해보세요.”

 

궁금해서 환자가 나간 뒤 한국인 관리자에게 물어봤다.

 

“왜 저 이주노동자는 한국인이 약품을 탔다고 생각하죠?”

 

관리자가 대답하길, 그 작업장에서는 페트병에 투명한 유기용제를 담아 사용한다고 한다. 자기가 갖다 놓은 생수병과 유기용제를 담아놓은 페트병을 착각한 것 같단다.

 

“그런데 왜 한국인을 의심하죠? 같은 파키스탄 동료가 그랬을 수도 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 파키스탄 근로자가 2년 전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컨테이너 숙소에서 한국인 근로자들과 함께 생활했었단다. 자신이 형처럼 따르던 한국 근로자와 너무 친하게 지냈었는데 어느 날 무슨 일인지 그 사람으로부터 폭행과 욕설을 당하고 그 이후부터 한국사람들을 믿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쩝....’

 

한참을 망설이던 그 환자는 진료실로 다시 들어오더니 일단 약을 먹어보겠다고 한다. 보험이 안되는 그 환자에게 한국에도 마음씨 따뜻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서 진료비를 보험환자 수준으로 받고 돌려보냈다. 

며칠 뒤 한껏 부드러운 표정으로 그 파키스탄 근로자가 다시 진료실을 찾았다. 증상은 거의 사라졌고 자긴 다시 고향으로 간다고 한다. 한국이 싫고 고향이 너무 그립다고 한다. 그를 보내는 내 마음이 한없이 무거웠다. 

 

2011년 통계로 한국에 체류 중인 이주노동자 숫자는 60여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거기엔 물론 5만 명이 넘는 불법체류인도 포함되어있다. 우리 병원이 있는 이곳은 양촌학운 산업단지로 아파트형 공장에 밀집되어있는 작은 영세기업부터 직원 수백 명의 중기업까지 근로자들과 그 가족들, 또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인들로 이루어진 지역이다. 

식당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여성은 조선족이며 탈북자들과 그 가족들도 결코 적지 않게 마주칠 때가 많다. 어쩔 땐 내가 중국 연변에 와있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이제 한국사회는 여러 인종과 문화가 혼재되어있는 다문화사회이다. 130만 명이 넘어 인구의 2%나 차지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정말 부끄러울 때가 많다. 자신의 가족을 돌보고 새로운 미래를 위해 희망을 품고 온 그들 -사실 그 사회에서 엘리트인 경우가 많다- 을 우리는 정말 세계시민의 마음으로 보듬어 주고 있는가? 이들이 없으면 우리나라 제조업과 요식업 업종은 그 생존을 유지 할 수가 없다.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3D 업종에서 이들의 노동에 기반해 우리사회는 유지 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민족성을 운운하는 것을 상당히 싫어한다. 보통 민족성의 장점보다는 자신의 민족을 비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로 미국 유학파들이 포함된 한국의 지배계층들에게서 그런 말을 들을 때 생기는 그 역겨움 때문이다. 

 

이주해온 외국인에 대한 혐오와 비하가 어찌 우리 민족 뿐이겠는가? 이번 프랑스 언론사 테러사건처럼 신자유주의 광풍으로 인해 만성적인 실업과 고용불안을 겪고 있는 유럽대륙에도 민족주의를 앞세운 국수주의와 인종차별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지 않은가?

 

실제로 한반도의 반만년 역사에서 여러 민족과의 교류와 전쟁을 거치면서 유전적 다양성을 지니게 되었음에도 한국인의 의식 속엔 순수한 피라는 단일민족의 환상이 아직도 자리 잡고 있다. 타민족에 대한 배제와 차별은 그대로 같은 한국사회에도 반영되어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양극화로 나타나고 있다. 

 

사회민주주의자는 연대에 기반한 따뜻한 공동체 사회를 지향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내국인과 이주민, 정상인과 장애인, 국립대와 지방대, 남성과 여성, 고학력자와 저학력자, 세대와 세대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배제와 차별을 없애야 한다. 사회가 만든 barrier 때문에 인생의 여러 갈림길에서 장벽을 마주하게 되는 이 시대 모든 장그래를 위해 사민주의자는 한국사회의 barrier를 철폐해야 한다. 

 

인류역사는 배제와 차별, 계급투쟁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계급통합의 역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