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경제학
진료실에서 바라본 세상 <2>
   
 

 

어느 날 할머니 한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노인정의 한 어르신이 레이저 치료로 검버섯을 제거했는데 본인도 받고 싶으시다고 하십니다.

 

“나보다도 나이도 많고 얼굴도 못생겼는데 레이저 치료받고 예뻐졌다고 영감들이 난리여. 원장님! 나도 좀 젊게 만들어주셔.”

 

“아, 예. 그러시죠”

 

“내가 말이여! 시집오기 전까지만 해도 친정집이 고향 유지여서 남부럽지 않게 살았는디 울 영감 만나고 자식들 키우느라 이리 늙어버렸다니깐. 근디 보험이 안 된다는데 돈 많이 드나?”

 

“네. 전 부자에게는 많이 받고 가난한 분은 적게 받아요. 근데 어르신은 얼굴에 부잣집 맏녀느리라고 쓰여있어요.”

 

“아이고! 나 어려서부터 무지 가난했다니깐! 나 돈 없어! 얼마에 해줄껴?”

 

“이백만 원만 주세요”

 

“엥? 원장님 농도 잘하셔ㅎㅎㅎ.”

 


마태복음에 포도원 농부의 품삯에 대한 예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포도농장 주인이 일용직 노동자를 인력시장에서 불렀습니다.

 

일당은 한 데나리온...

2000년 전 로마식민지 팔레스타인에서 일용노동자의 임금입니다. 현재로 보면 최저 시급 5,580원 × 8시간 = 44,640원 

 

오전 6, 9, 12시 그리고 오후 3, 5시 모두 다섯 번 농부를 구합니다. 계약조건은 한 데나리온 44,640원 

 

마지막 일이 마무리되는 오후 6시 농장주인은 서로 다른 농부들에게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 지급합니다. 새벽에 나온 농부가 항의합니다.

“나는 마지막 온 농부보다 12배 일을 더 많이 했는데 왜 같은 품삯을 주시는 거죠?"

농장주인은 말합니다.

"내가 당신과 약속한 품삯은 한 데나리온입니다. 내가 당신들에게 불의를 저질렀나요?"

그들은 말없이 돌아갔습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이런 임금법칙을 적용한다면 열심히 일할 사람은 없을 것이며 정의의 원칙이 사라졌다 할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분들은 인간의 노력과 무관하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 구원의 비밀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사민주의자의 입장에서 말합니다. 국가와 공동체는 그 구성원들의 생존과 존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들이 뛰어나건 모자라건 모두 우리의 형제요 자매며 누구도 타인의 도움 없이는 그 무엇 하나도 할 수 없는 사회화되고 고도로 분화되고 복잡한 인연으로 얽히고설켜 있습니다.



천국의 경제학!



사민주의 복지국가의 원리는 능력의 경제학이기도 하나 필요의 경제학이기도 합니다. 바로 천국의 경제학이요 잠정적 유토피아의 경제학입니다. 경제는 인간을 위해 구성되는 것이며 인간을 위해 경제가 있는 것이지 부를 위해 인간이 수단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며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의 통제 밖에 존재하는 괴물이 아닙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자신이듯 사회의 주인은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런 인간을 위한 경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럴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발 딛고 있는 이 땅. 지금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세대에 힘들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디딤돌 징검다리입니다. 그런 세상으로 향한 다리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천국을 만듭시다. 천국을 유예하면서 현실의 불합리를 합리화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소중하고 우리 서로가 정말 아름답고 소중한 이들입니다.

   

 

 

 

글/김명일 (이젠드림 가정의학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