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의사가 명의로 둔갑하는 나라
진료실에서 바라본 세상 <1>

 

   
 

 

개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조선족 환자 한 명이 찾아왔다. 

10년간 피부병을 앓았단다.

가려워 못 참겠단다.

한국에 온 지 5년

중국에서도 할 만큼 해봤단다. 


“도대체 어디가 그리 가려우세요?”


쭈뼛하며 바지를 내린다.

부끄러운 듯 사타구니 사이 음낭을 들춘다.

피부는 이미 만성적인 가려움에 시달려 코끼리 피부처럼 두꺼워진 태선화양상을 보인다.


‘우씨!

왜 10년 된 피부과 환자가 날 찾아오는 거야?

대학병원 피부과가 갈 것이지...’


“다른 병원 안 가보셨어요?”


“갈 만큼 가봤죠.

대학병원 피부과도 가보고요.

도대체 듣질 않아요.”


‘나보고 어쩌라고!’


음낭의 가려움증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가장 흔한 질환은

피부 곰팡이 감염인 완선과 옴이다. 


“다른 곳 가려운 곳은 없으세요?”


환자는 웃옷을 올린다.


어라? 

경계가 올라온 넓게 퍼진 브라운 칼라의 피부

바로 곰팡이 감염인 체부백선, 바로 전풍이다. 


“발 좀 보여주세요.”


양말을 벗은 환자의 발은

아니나 다를까 무좀으로 각질과 발톱이 두꺼워져 모양이 변형되어 있다. 


환자에게 내기하자고 했다. 

“제가 환자의 피부병 낫게 하면 저한테 뭘 해주실래요?”


“네? 그러면 선생님 해달라는 거 다 해주죠.

정말 고쳐주실 수 있어요?”


“피부병 나으면 저한테 삼겹살에 소주 한잔 사는 거에요?”


환자에게 항진균제 연고와 약을 일주일 처방해 주고 다시 보자고 했다. 

속으론 한편 불안감도 생긴다.

‘정말 곰팡이 감염 맞을까?

피부과 의원, 대학병원까지 진료받았던 환잔데 왜 치료가 안 됐지?

의대생들도 한번 보기만 하면 진단할 수 있는 피부질환인데...’

반신반의하며 환자를 보냈다. 


일주일이 지났다. 

환자는 나타나지 않는다.

‘내 진단이 잘못되었나?

나았는데 밥 사기 싫어 안 오나?’


열흘 정도가 지났다. 

진료실 문이 빼꼼 열리더니

환자가 머리를 들이민다.

바로 그 환자다.

미소와 옅은 웃음의 얼굴이다.


“어떠셨어요?”


“박사님! 정말 좋아졌어요. 이제 안 가려워요.”


‘나 박사 아닌데....’


“아 그래요. 잘됐네요.”


이미 치료는 끝났는데

환자는 일주일만 약을 더 먹겠단다. 

자신이 10년 동안 앓아온 병에 대한 불안감의 표현이다. 


‘그래 일주일 더 먹으나 덜먹으나 대세에 지장은 없다.’


“약 드시는 동안 술 드시지 말고요.”


“예, 원장님”


피부질환에 대해서 대학병원 교수님들이 나보다 더 많은 공부를 하고 논문을 쓰고

컨퍼런스를 하고 국내 국제 학회에서 발표도 하셨을 것이다.

박사님은 그분들이다. 적어도 피부질환에 대해선.


그런데 세계적 의료수준을 갖춘 대한민국의 대학병원 교수님은

과연 왜 나같이 평범한 가정의학과 의사가 치료하는 병을 놓쳐야만 했을까?


대답은 하나

한국의 무너진 의료전달체계가 그 원인이다. 

3시간 대기 3분 진료

어떨 땐 3분도 채 되지 않는다. 


오전이나 오후 한 타임에 60~70명을 진료해야 하는 3차 병원

교육하랴 연구하랴 논문 쓰랴 강의하랴 바쁘기만 한데

병원자본은 그런 교수님들에게 외래환자도 많이 보라고 한다. 

그걸로 실적을 매기고 인센티브로 떡고물을 던진다. 

그런 사정은 의료원이나 시립 도립병원과 같은 공공병원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한국의 의료시스템은 명의를 오진하는 의사로

나처럼 개업해서 비교적 적은 환자를 돌보며 진료할 수밖에 없는 의사를

명의로 둔갑시켜 버리는 아주 훌륭한 의료시스템을 가진 멋진 나라이다. 


아플 때나 건강할 때도 이웃처럼 들르고 상의할 수 있는 의사

환자가 건강문제로 첫 접촉을 하는 의사가 가족단위로 정해져 있는 주치의제도

주치의제도로 대표되는 일차 의료시스템.

일차 의료시스템이 탄탄히 갖춰진 나라일수록

국민의 건강수준은 높고 의료비지출은 줄어들게 된다. 


대통령이나 재벌총수뿐만 아니라 서민들도 그런 주치의가 있는 세상을 꿈꿔본다.


세 번이나 다녀간 그 조선족 환자는

3개월이나 지난 지금도 소주에 삼겹살을 사주러 나타나지 않는다.

혹여나 불법체류의 단속을 피해 도피 중은 아닌가?

 

 

   
 

 

글 / 김명일 (이젠드림 가정의학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