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사회민주주의의 시대』- 첫번째 글
북유럽 사회민주주의의 형성과 전개

 ※ 이 서평은 모두 3개의 글로 나뉘어 실릴 예정입니다. 

   
▲ 사회민주주의의 시대

"높은 수준의 소득과 성장 그리고 혁신이 고도의 사회보장과 결합되는 것은 가능하다. 북유럽 사회는 그것을 이룩해왔고, 그들의 경험은 다른 나라들의 선택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복지국가들은 대부분의 경제 지표와 거버넌스 지표에서 다른 나라들을 능가하는 경향이 있다." -제프리 색스

어떻게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복지국가를 평화로운 방법으로 이룰 수 있었을까? 사회민주주의가 북유럽에서 패권을 쥐고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역사적 배경과 정치경제 상황은 어떠했는가? 북유럽 복지국가 모델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한국 사회는 과연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역사를 모르고 사회민주당의 성공에 대해 제대로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제 스칸디나비아 사회민주주의 100년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번에 소개하는 번역서사회민주주의의 시대』의 저자인 프랜시스 세예르스테드는 노르웨이의 저명한 역사학자이며 정치경제사에 능통한 인물이다. 그리고 이 책은 1905년 스웨덴-노르웨이 연합 왕국이 해체되고 노르웨이가 독립국으로 출범한 기념으로 2005년에 출판된 두 권의 책 중 하권으로 2010년 개정판이다.  제1권은 1814년~1905년까지, 제2권은 지금 소개하는 1905년~2000년까지인데, 제2권은 두 나라의 사회민주주의 발전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이 두 권의 책은 국내에 소개된 스칸디나비아 사회민주주의와 그들이 일궈낸 복지국가에 관한 책 중 단연코 최고의 깊이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나라들의 역사적 배경과 정치, 경제, 사회를 폭 넓게 다룬 이 책을 읽지 않고 북유럽 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를 논한다는 것은 거의 겉핥기 수준에 그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동안 국내에 출판된 여러 권의 책들이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사회민주주의를 다루고 있지만, 하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복지국가 사회정책에 관한 책들로 저자가 몇 년 간 연구원 자격으로 스웨덴에 체류했거나 혹은 짧은 방문 기간에 현지에서 보고 느낀 것을 적은 일종의 견문록 정도였으며, 그나마 북유럽 사회민주주의의 기본적인 가치와 노선을 다룬 번역서들이 몇 권있지만, 그 내용이 빈약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북유럽 사회민주주의’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의문점 퍼즐들에 대한 답을 구하면서 나의 이해도가 완성되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국내정치 환경은 현재 어떤가? 여전히 북유럽 복지국가나 그들이 사회민주당으로 정권을 장악한 정치사를 우리나라에서 언급하면 여전히 백안시 당한다. 여전히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반감과 편견, 오해, 질시가 팽배한 실정이며, 북유럽 복지국가는 그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먼 나라 좋은 나라 일이라는 생각, 그리고 그들이 이룩한 복지국가 모델은 한국 사회에서 실현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대다수이다. 개혁적인 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한 전직 장관 역시 공개적으로 “한국에서 북유럽 복지국가는 불가능하다”하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이룩한 포괄적인 사회보장제도와 수준 높은 공적 지원, ㄱ릐고 평등한 가치 기준에 따른 균등한 소득분배를 달성하는 것이 정말로 불가능한 것인가? 그리고 우리가 조금이라도 이런 모델에 근접하기 위해 노력을 다하는 것이 과연 우리 현실에서 무용한 일일까? 북유럽의 역사 속에 담긴 사회민주주의의 기반을 이해하고, 그것을 한국 사회에 접목하는 것이 그토록 어렵고 힘든 길이라고 할 수 있는가? 새삼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 사회민주주의의 시대』는 3부로 엮어져 있다.『사회민주주의의 시대』 개괄적인 목차는 다음과 같다.

제1부 1905~1940년 : 성장과 사회통합

제2부 1940~1970년 : 사회민주주의의 황금기

3부 1970~2000년 : 더 부유한 현재

결론 / 사회민주주의 이후 : 새로운 사회구조를 향하여
 

먼저 저자는 이 책에서 20세기 문턱을 넘어 서방 세계의 근대화 중간 지점에 이르러 사회위기와 만나는 1905년부터 북유럽의 역사를 서술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사회주의가 스칸디나비아 사회에 어떻게 평화적으로 편입될 수 있었는가, 그리고 사회민주주의가 어떻게 정치에서 주도권을 쥐고 영향력을 발휘하게 됐는지에 관한 그 원인과 배경을 분석한다. 그리고 무엇이 북유럽 사회민주당의 정치적 이상이 되었는가를 분석한다. 그는 이 책에서 스웨덴과 노르웨이 양국을 상세하게 비교하면서 당시의 유럽 상황을 함께 기술하고 있다.

제1부 - 1905~ 1940년: 성장과 통합

1905년은 스웨덴과 노르웨이 연합이 해체된 해인데, 그 해 1905년에 대한제국은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하여 사실상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치욕의 역사가 우리나라에서 시작되었다 .

1905년의 유럽은 어지러운 대혼란기였다. 독일이 가장 강력한 나라였고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 등 유럽 각국의 패권 다툼이 치열해지던 시기였다. 제1부에 해당하는 1905년~1940년 동안 제1차, 2차 세계대전 발발하였고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은 전 유럽을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하였다.

이런 유럽의 혼돈기 와중에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스칸디나비아식 사회민주주의 모델 성공을 위한 여정에 나서고 있었다.

스웨덴과 노르웨이가 연합왕국이었던 역사적 배경을 잠시 더듬어보면, 노르웨이는 본래 덴마크에 속한 영토였다. 그러다가 나폴레옹 전쟁 와중에 덴마크는 스웨덴에 패배하여 노르웨이를 스웨덴에 양도하였고 그래서 스웨덴-노르웨이 연합왕국이 탄생하였다. 그것이 1905년 연합이 해체된 것이다.

1930년은 스웨덴과  노르웨이에서 모두 사회민주당이 정권을 장악한 시기였다. 알다시피 스칸디나비아식 사회민주주의는 1960년대 절정을 이룬 황금기였다. 혁명적 마르크스주의가 대세였던 유럽의 한 가운데에서 전간기 (양차 세계대전 사이 1919~1939년)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자본주의를 수정하고 개량하며 근대화를 이루어 오늘날 스칸디나비아 사회민주주의의 틀을 만들었다.

『사회민주주의의 시대』의 저자는 “왜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초기 사회민주당이 혁명적 마르크스당에서 민주적 개량주의를 택해야만 했는지는 확실치 않다”라고 언급한다.

20세기 초 스칸디나비아 국가 뿐 아니라 유럽 전체가 대립과 갈등, 사회적 혼란기 틈바구니에서 스칸디나비아 모델은 서서히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스웨덴과 노르웨이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정치적 경로를 걷게 된 배경에는 먼저 양국 모두 연합왕국의 일부였다는 역사적 배경 하에 본래 단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단일민족이라는 배경이 있지만 또 하나는 양국 모두 공통의 종교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즉 스칸디나비아 나라들에는 ‘루터교’라는 공통의 종교가 있었다. 그리고 교회와 국가의 결속력을 바탕으로 종교와 국가에 대한 존중이 높은 수준이었으며, 이런 결속력으로 국가가 사회복지 기능을 이어받음으로서 현대의 스칸디나비아 보편적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흐름이 존재했다고 한다.

책의 이 대목에서 나는 스웨덴 학생들이 늘 암송한다는 구절을 떠올렸다.

나의 미래는 낙관적이다. 나의 미래는 스웨덴의 미래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가가 존재하고 사회보장제도가 나를 보호하는 한 나는 실패가 두렵지 않다. 국가는 내가 힘들 때 도움을 주고 위기가 닥쳤을 때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힘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나야할 미래' 중에서 발췌 -최연혁 지음)

스칸디나비아 국민들의 국가에 대한 믿음과 신뢰 형성이 예전부터 형성되어 있었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 책에 따르면, 1905년 스웨덴-노르웨이 연합이 해체될 시기에 스웨덴은 이미 세계적으로 확고한 중공업 산업을 갖추고 은행체제 준비와 함께 자본 회사를 통제하는 법이 제정되어 있었으며 그 결과 상류층이 강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공무원, 지주, 공장주, 기업가). 그리고 노르웨이는 유럽에서 가장 민주적인 헌법과 의회통치 방식을 가져서 민주주의화는 스웨덴보다 앞서 있었다. 1905년 연합 해체 초기에 양국 간의 냉랭한 분위기였는데 하지만 스웨덴과 노르웨이, 덴마크는 서로 협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났고 러시아는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 위협적이었다. 이러한 국제 정세에서 스웨덴-노르웨이 양국 사회민주주의자들의 확고한 신념은 착실히 하나하나 실천에 옮겨지고 있었다.

사회민주주의의 길을 연 얄마르 브란팅

흔히 스웨덴 정치 지도자 중 스웨덴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페르 알빈 한손 총리와 스웨덴이 뽑은 가장 뛰어난 정치 지도자인 타게 에를란데르, 그리고 스웨덴이 사랑한 정치가 올로프 팔메 - 이 세명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사회민주주의 정치인들의 초석을 닦은 인물이 바로 얄마르 브란팅이다.

이 책에 따르면, 1900년대 초반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사회민주당 지지율은 3% 정도였다. 사회민주당 창당은 노르웨이가 1887년, 스웨덴이 1889년이다. 그런 사회민주당이 어떤 경로로 1920년 브란팅 총리를 탄생시키며 사회민주당의 집권 역사를 열어 젖혔는지 나는 그동안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잠시 브란팅 시기의 집권 역사를 보자.

   
▲ 스웨덴에서 사회민주당 첫 집권 시대를 연 브란팅

브란팅은 오랫동안 스웨덴 의회의 고독한 사회민주주의의자이었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회민주당이 창당한 이래 단 1석의 의회 진출도 못한 채 7년이란 세월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는 1896년 사회민주당이 아닌 자유당 명부의 하원 의원에 당선 되어 의회에 처음 진출하였다. 그 이후 비례대표제가 처음 도입되면서 사회민주당은 1903년 4명의 의원, 1915년 87명의 당선으로 하원을 장악하게 된다. 그리고 브란팅 총리와 사회민주당이 처음 집권하는 것이 1920년이었다.

브란팅은 무슨 재주로 어떤 지략으로 사회민주주의의 위대한 역사의 문을 열었는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 소개된 당시 스웨덴의 작가인 구스타브 프뢰딩이 말하는 브란팅 평가를 보자.

"스웨덴에서 이 '사회주의의 문제아' 만큼이나 내가 높이 평가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는 가능한 한 스스로를 하층민으로 보이게끔 하려고 애쓴다. 짐작하건대 그는 그의 당 친구들을 짜증나게 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소박한 옷차림을 하고 수염도 덥수룩하다. 그러나 그가 가진 뛰어난 지식과 무시하지 못할 재능을 잘라 내거나 없애버릴 수 없듯이, 잘생긴 코와 지략과 재치가 가득한 눈, 그리고 개성 있는 이마는 그가 평민이 될 수 없는 이유들이다. 그는 사람들을 차분하게 대했는데, 최악의 상대에 대해서조차도 그러했다. 그는 결코 정치적으로도 편향되지 않았다."

어떤 정치 세력이든 초창기에 초석을 다진 인물에 의해 당의 미래와 후계자가 이어진다. 쉽게 말해 첫 번째 단추를 잘 끼워야 되는 법이다.  우유부단하고 체계적이지 못했다는 평가를 얻기도 했던 브란팅이 사회민주주의의 정치적 지도력 획득을 위해 이룬 공적은 실로 위대했다는 점을 『사회민주주의의 시대』를 읽으면서 느꼈다.

여기서 늘 궁금하게 여겼던 사회민주당과 자유당과의 연합 배경을 보면, 브란팅은 부르주아 상류층 출신으로, 웁살라대학 시절 모든 학생단체 활동을 하며 일찍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브란팅이 자유주의 좌파 노선의 자유당과 정치적으로 연합하게 된 배경을 축약해보면 이렇다.

스웨덴 사회민주당과 온건 보수 성향(즉 사회 자유주의 = 진보적 자유주의 성향)의 자유당 간의 협력은 당시 보통선거권 쟁취를 위한 공동의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양자간 협력의 또 다른 큰 요인은 당시 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긴박한 상황에서 노동운동이 무정부주의적, 국가에 또 다른 정부를 형성하려는 경향이 있었다는 점이다. 국가를 위한 사회 질서를 지키기 위해 서로 협력한다는 공동의 지향점이 있었다. 자유당은 사회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전통주의자 (왕족을 위시한 보수세력)에 맞서서 근대주의를 옹호했고 양 진영 간에는 근원적인 갈등이 존재했다.

브란팅은 1911년 당시 집권당이었던 자유당의 입각 제의를 거절했으나, 1917년의 자유당 정권에는 입각함으로 연립내각 구성에 참여했다. 그리고 그해 1917년 10월에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혁명이 발발하고 그리고 핀란드에서 우익- 좌익 간 내전이 벌어지고 있졌다. 러시아혁명의 발발은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분열을 가져왔는데, 결국 사회민주당의 일부가 공산당(나중의 좌파당)을 창당하여 떨어져 나갔다. 스웨덴 좌파당은 러시아 혁명을 받아들여 코민테른에 가입하였다.

이런 위기와 분열, 대립이 극심한 시기에 사회민주당은 최초로 집권에 성공하며 , 브란팅 총리가 탄생하였다. 브란팅은 탁월한 지도력으로 사회민주주의 시대를 열은 것이다. 사회민주주의에 있어 브란팅의 공적은 이루 말할 수 크다는 점이다. 한편 노르웨이에서는 1917년 사회민주당이 최초로 의회 교섭단체를 만들었으며, 이어서 1928년에는 최초로 사회민주당이 집권하여 사회민주주의 총리가 탄생했는데 그가 바로 호른스루드이다.

1974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 군나르 뮈르달/ 알바 뮈르달 

에른스트 비그포르스는 스웨덴 복지국가를 설계하고 건설한 인물이다. 한손 총리 시절 비그포르스는 스웨덴 복지국가의 기틀을 확고히 만드는데 큰 공적을 남겼다. 그런데 복지국가를 만드는데 있어 혼자만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건 불가능하다. 비그포르스에 비해 뮈르달 부부(군나르 뮈르달. 알바 뮈르달)는 조금 덜알려진 인물인데, 하지만 뮈르달 부부의 사회복지 정책은 복지국가의 틀을 완성하는데서 오히려 비그포르스 보다 앞서 실천한 인물이다. 이 책은 북유럽 복지정책을 실현한 맨 앞자리에 서야 할 사회민주주의자로 뮈르달 부부를 평가한다. 

   
  197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는 뮈르달 부부
스웨덴 여성들의 첫번째 정치적 집단행동인 보통선거권 획득 투쟁은 1905년에 시작되어, 1907년에 제한적인 여성투표권을 획득하고 1918년에는 완전한 여성 동등 투표권을 획득하였다. 이 과정에서 알바 뮈르달이 끼친 영향력을 지대하였다. 노르웨이는 스웨덴 보다 이미 훨씬 전에 여성 참정권이 획득된 나라였다.

북유럽 국가들의 학교 교육을 동영상을 통해 보면, 학생들이 목공기술을 필수적으로 배우며 학교의 실습설비가 기업체 설비에 뒤지지 않을 정도이다. 이는 오래전부터 북유럽 국가들이 기능과 기술자를 인정하는 경향이 정착되어 있었다는 말이다. 이것이 단순히 그냥 정착되었을까?

이 책은 그것이 뮈르달 부부의 테크노라시(기술주의) 정책 지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음을 지적한다. 사회민주주의 집권 초창기에 등장한 이렇듯 기술과 기능을 중시하는 새로운 경향을 일으킨 것이 뮈르달 부부였다. 북유럽 국가에 공통적으로 중소기업이 발달하고 현재 스웨덴의 이케아 가구가 전 세계에 북유럽풍 가구를 유행시키고 있는 원동력이 바로 이런 기능과 기술에 대한 긍정적 정책이 아닐까 싶다.

또한 뮈르달 부부는 미래 세대를 내다보는 <인구 문제의 위기>를 부부 공저로 발행하여 전간기 사회복지 정책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다.  현재와 미래를 아우르는 혜안을 가진 사회정책이 한 나라의 사회 발전을 후퇴시키기도, 미래로 전진하게 하기도 하는데, 뮈르달 부부의 '예방 차원의 사회정책' 은 오늘날에도 복지정책의 중요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노동운동, 노동조합, 민중운동을 이끌다

북유럽 국가들의 노조조직율은 70~80%에 이른다. 이는 경제활동을 하는 인구는 거의 모두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사회민주주의의 시대』에서 노동운동에 대해 이야기하는 몇 가지를 함축해보면 다음과 같다.

- 20세기 초엽의 유럽의 혼란한 시기에 마르크스주의에서 탈피하여 근대화 과정에 이르러 수준 높은 평등성을 기본으로 하는 균등한 소득분배가 가능했던 이유로 노동조합의 역할이 부분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  이 과정에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역사적 타협(협약)이 있었다.   

- 노동자-농민간 협약, 노동자-자본가 간 협약 등 사회전반에 걸친 협약이 수립되었다. 

 - 군나르 뮈르달 같은 사회민주주의 지식인의 '테크노크라시' 정책이 새로운 경향을 만들었다. 

-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강력한 상류층에 대항하는 민중운동을 대규모로 이끌게 된 노동운동이 등장한 것이 중요했다. 

- 노조가 민중운동에 강력한 지도 세력으로 등장하면서 처음부터 노동운동이 교육과 문화, 계몽운동, 스포츠단체 설립을 이끌면서 대중적인 노조 활동을 하였다. 

- 스칸디나비아 사회민주주의의 지도력은 노동자-농민 세력의 연합과 이들이 수행한 협동조합주의와 타협의 방향으로 나아갔다.

- 노동운동은 처음부터 사회복지에서 보편주의를 옹호함으로서 차후 복지국가에 착수 할 수 있게 하였다.

- 이러한 노동운동은 근로자 보호법이 스웨덴-1889년, 노르웨이-1892년에 제정되고 노르웨이에서 1906년 실업보험 제정, 스웨덴에서 1913년 세계 최초로 국민연금 제정이 제정되며, 스웨덴-노르웨이 양국 모두 1918년 1일 8시간 근무법이 제정되고 1931년 스웨덴 건강보험이 제도화되는데 영향을 미쳤다. 스웨덴은 1905년 당시 노조 조합원이 10만4천명이었다.

-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노동운동은 서로 긴밀하게 국제적으로 협력하였다. 노동조합연맹(LO)은 스웨덴-1898년, 노르웨이-1899년 설립되었다.

대한민국이 조선시대 말 개화기 문이 열림과 함께 일제 강점기를 겪으며 수탈당하는 그 시기에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노동조합 상황은 이렇게 앞서 나갔던 것이다.

스칸디나비아 사회민주주의 사회적 모델, 보편주의 사회 정책

스칸디나비아 사회민주주의 사회적 모델과 정치방식은 독일 사회민주당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런데 독일 사회민주당에 불기 시작한 수정주의 논쟁은 1890년대 말 당 노선의 분열을 가져왔다. 독일 사회민주당이 1891년 마르크스적 당 강령을 채택할 무렵, 스웨덴과 노르웨이 초기 사회민주당은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에서 탈피하여 개량주의를 택하기 시작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지점으로, 스칸디나비아 사회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비밀의 열쇠가 아닐까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왜 북유럽의 사회주의자들은 마르크스주의를 버리기 시작했을까? 이 책 저자의 분석은 하지만 " 확실치 않다. 20세기 초 스칸디나비아 국가뿐 아니라 유럽 전체가 위기와 대립 상황이었다"고 한다.  아마도 북유럽 사회민주주의자들의 현명함과 영리함이 기존 구도를 바꾸어 놓은 것이 아닌가 싶다. 또한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들이 유럽의 혼란기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지 않았을까? 유럽 전체가 대공황과 전쟁의 대혼란기를 보내는 동안에 스웨덴-노르웨이에서는 사회민주당이 안정적으로 집권하였는데, 즉 1930~1960년대에 양국에서는 사회민주당이 지속적으로 집권하였다. 그리고 집권한 사회민주당은 착실하게 오늘날 북유럽 모델이라 불리는 사회체제를 뿌리 내렸다. 

 스칸디나비아 모델 몇몇 특성을 저자의 말을 빌려보자.

- 포괄적인(보편적인) 사회보장 제도
- 제도화된 보편적 사회권리
- 평등성을 기본으로 하는 수준 높은 공적 지원

이러한 사회질서의 바탕에는 균등한 소득분배가 이루어져야하는데, 노동조합이 부분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저자는 쓰고 있다.

이 책의 분석을 요약하면, 스칸디나비아 사회민주주의가 1930년에 성공 시대를 개시할 무렵 ,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 역사적 타협(협약)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들 나라에서 자본주의는 수정되어 통제되었고 이윤을 추구하는 것 역시 철저하게 제약되었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서로 영향을 끼치며 복지국가 만들기로 나아갔던 것이다.

또한 이 책의 저자는 "스칸디나비아에서는 단일 민족에서 오는 사회연대감으로 사회경제적으로 깊은 갈등이 없었다. 종교적 마찰도 없었고, 실용적이었으며 사회 제도도 온전했다. 스칸디나비아 보수당도 공산주의자와 파시스트 독재에는 반대했다."고 쓰고 있다.

무엇보다 '사회 통합' 이야말로 이들의 복지국가 형성의 가장 중요한 토대이다. 이점은 현재 불신과 반목, 질시, 불평등이 만연하여 위기로 치닫는 한국 사회에 던지는 강한 시사점이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중립정책, 사회개혁 결실, 사회민주주의 황금기를 향하여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1905~1940년의 어지러운 시기를 어떻게 극복하고 복지국가의 황금기를 열었을까? 전쟁을 운좋게 피했다거나, 유럽이 혼란스럽거나 말거나 우리는 우리 길을 간다는 식이었을까?  이 책 『사회민주주의의 시대』를 읽어보면, 그것이 행운의 덕택 또는 고집스런 외골수 길의 덕택이 아니라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지혜로운 영민함 덕택임을 보게된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도 공산화 되거나 전쟁의 희생물이 될 수 있었다. 그 시기에 발칸전쟁과 러시아 혁명, 1차 세계대전, 세계 대공황, 히틀러의 유럽 점령, 1939년 소련-핀란드 전쟁, 1940년 독일의 노르웨이 침공이 있었다. 대한민국 역시 일제 강점기를 겪으며 국가 발전이 정지된 시대였다.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정치 분열도 심각했다. 이 책에 따르면 스웨덴에서는 1920년대 말에 나치 성향의 청년단이 설립되어 활동했다. 그리고 노르웨이 지식인들의 대부분이 마르크스주의자였으며 1차 세계대전 이후 노르웨이 사회민주당은 독일 사회민주당보다 훨씬 강하게 마르크스의 지적 유산을 고수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혼란스런 국제정세 속에서도 결속하여 스웨덴과 노르웨이, 덴마크가 1912년 공동 중립 정책을 선언하여 전쟁에 공동 대응을 하였다. 이것은 이들 나라가 전쟁에 휩쓸리지 않고 착실한 사회개혁을 이루는데 큰 요인이 되었다.

1930년대에는 스웨덴의 국부로 추앙받는 페르 알빈 한손 총리가 사회민주당 정권 장악을 하며 정치적 안정을 찾았다. 한손 총리는 절묘한 지략으로 중립 노선을 고수하였는데, 노르웨이가 독일에 침공당했어도 스웨덴은 독일군 군수물자의 스웨덴 내부 이동을 허용하기도 했다. 그 전쟁 동안 노르웨이 본토로 구호 식량을 전달하고 노르웨이인 6만 명을 스웨덴으로 피난시키는 등 스웨덴은 노르웨이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이렇듯 전쟁에 휩쓸리지 않는 탁월한 리더십으로 이끌었던 한손이었다.

한손 총리 하의 스웨덴은 마르크스의 경제학에서 벗어나 케인스 경제이론을 수용하며 저 유명한 '국민의 집' 이념을 앞세워 복지국가 황금기로 향하였다. 이때 비그포르스, 산들레르, 칼레뷔가 두각을 나타내며 복지국가 정책의 틀을 함께 다졌다.

이 책에서 내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한손 총리가 주창한 ' 국민의 집'은 사실 1900년대 초반에 스웨덴 보수당이 사용했던 개념이며, 그것을 한손 총리가 보편화 시켰다는 것이다. 한손 총리는 보수가 사용하는 수사법도 자주 차용하는 등 책략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이처럼 국가를 이끄는 최고 지도자가 갖추어야할 비전과 사명의식, 지적능력, 탁월한 식견을 갖춘 리더십, 그리고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길이 어떤 것인지를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보여주었다.

한손 총리가 스웨덴을 이끌 무렵 비슷한 시기에 노르웨이에서는 사회민주당 총리 뉘고르스볼이 정권을 장악하였고, 양국은 양국은 긴밀한 관계로 사회민주주의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사회민주주의의 시대』 서평 첫번째 글 (끝)

P.S.>

이 책은 글항아리 출판사에서 번역하여 출간하였는데, 아쉬운 점은 북유럽 사회민주주의의 역사에 대한 기념비적인 저서임에도 번역이 군데군데 어색하고 문맥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 큰 오류는 166페이지의 스웨덴 브란팅 총리의 사망 연도의 오류이다. 이 책에는 1905년 사망이라고 쓰여 있으나 브란팅의 사망은 1925년이다. 나는 글항아리 출판사 편집부에 이 부분의 오류를 전달하였다.   by이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