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은 정말 개혁적일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통을 세우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

교황의 말과 행동이 인기다. 페이스북에서는 ‘교황’이 어린아이를 의자에 앉힌 사진이 화제다. 

 

   
 

 

“자본주의는 새로운 형태의 독재”라는 다분히 정치적인 발언도 거침없이 내뱉는다. “경제 불평등은 현대판 살인자”라는 수위 높은 발언에 한 언론은 ‘종북 좌파급’이라고 이야기했다. 파격적인 교황의 행보는 많은 이들에게 기대가 되고 또 위로가 되고 있다. 덩달아 가톨릭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왼쪽은 교황 베네딕토 16세, 오른쪽은 교황 프란체스코이다. 교황의 의자와 복장이 소박해 보인다. 

 

정치적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던지는 교황은 아직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다. ‘특별한 교황’의 개인적 일탈이라고 볼 수도 있다. 


과연 교황의 행동은 말 그대로 일시적인 ‘파격’에 그치는 것일까? 가톨릭 교회에 큰 변화의 바람이라도 일어난 것일까?


프란치스코의 행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가톨릭 교회의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가톨릭을 완전히 바꿔놓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20세기 들어서 가톨릭 교회는 위기에 봉착한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을 막지 못했다는 회의감, 교회가 담당했던 나눔의 행위를 사회주의가 대체하는 것에 대한 위기. 거기에 날이 갈수록 이탈하는 신자들, 무신론의 확산.이에 가톨릭 교회는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교황 요한 23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한다. “교회의 모든 것이 완전히 변해야 한다”고 천명한 이 공의회는 가톨릭뿐 아니라 사회 여러 분야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킨다. 카톨릭과 토착 종교의 적극적 결합, 라틴어 대신 모국어를 사용하는 미사. 흑인 예수상이 등장한 것도 이 시기이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가 교황의 무오류성과 교회의 권위를 내세워 가톨릭을 더 보수적으로 만들었다고 평가받는데 반해 제2차 공의회는 교회의 문을 활짝 열고, 사회와 교회의 관계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릭의 가장 급진적인 변화는 바로 ‘선교’에서 나타난다. 공의회 이후의 선교는 이제 단순히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행위를 넘어선다. 세상의 정치적 경제적 모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정의를 이야기하고, 또 생태환경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적극적으로 ‘예수의 말씀을 실천으로 옮긴다’는 의미로 거듭난 것이다. 공의회 이전까지 ‘세상과 분절되어’ 존재했던 교회가 이제 ‘속세’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요한 23세와 프란치스코의 ‘평행 이론’


가톨릭 교회는 20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조직이다. 뛰어난 능력을 갖췄거나 커다란 야심을 가진 개인이라도 이 방대한 역사와 전통을 거스르긴 쉽지 않다. 그래서 ‘합의’가 필요한 일을 할 때 새로운 이론을 가져오기보다는 과거의 이론을 재발견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래야만 다양한 조직구성원의 합의를 도출할 수 있고 제도를 유지하기도 쉽다. 아주 새로운 것을 내놓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레퍼런스는 굉장히 전통적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도 그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기존 가톨릭 교회의 전통을 엎고 새로운 시도를 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통을 다시 세우기 위한 행동’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요한 23세와 닮은 행보를 보인다. 요한 23세는 사회적 약자들이 있는 곳으로 직접 발걸음을 향했으며 늦은 밤 몰래 바티칸을 빠져나와 로마시를 돌아다니며 삶의 모습을 관찰하고 고민했다. 노동문제와 빈부격차 등 사회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했다. 지금 프란치스코 교황의 파격적인 행보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그리고 한국 주교회


우리 사회의 불평등은 날로 더 문제가 되고 있다. 부의 추는 점점 더 한쪽으로 기울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출은 이렇게 돌아가는 세상에 책임을 느낀 가톨릭 교회의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그에 응답하는 교황의 행보는 직관적이다. 노숙자를 자신의 생일에 초대했고 팔레스타인을 직접 방문해 분리장벽 앞에서 기도했다. “멈추라. 제발 멈추라.”며 종전을 호소했다. 


그렇기에 교황의 방한 일정은 이상하지 않다. 방한 둘째 날인 15일에 세월호 유가족들을 직접 만나기로 결정했고 18일 명동성당에서 열리는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 용산 참사의 피해자,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밀양의 할머니들, 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위해 싸우고 있는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초대했다.


교황과 가톨릭 교회의 변화는 한국 주교회의 움직임과도 이어져 있다. 강우일 주교는 한 언론사의 기고문에서 “불의를 묵과한 모두가 세월호 공모자”라고 이야기하면서 “관피아들과 공조 체제를 이루며 불의와 비리를 양산해 온 사업가들, 규제를 완화하며 이런 세력을 양산해 온 국가 지도층이 아이들을 바닷속으로 쓸어 넣었다”고 말했다. 강 주교는 세월호뿐 아니라 밀양 송전탑 문제도 적극적으로 거론하며 한국 사회의 문제점들을 직접 꼬집었다. 


이번 방한에서도 “세월호 가족을 끌어안고 가겠다.”면서 국회의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한국 주교회는 교황의 시복식이 이뤄지는 광화문 광장의 세월호 유가족 농성장을 그대로 두고 행사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네거티브’한 한국개신교. 그리고 2000년의 역사와 전통의 힘.


지난 12일 ‘로마 가톨릭과 교황 정체 알리기 운동 연대’라는 이름의 어느 개신교 단체는 교황의 방한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로마 가톨릭 교회는 이단’이라고 비난했다. 이렇듯 한국의 주류 개신교는 정치적으로 보수주의를 취하면서 약자와 빈민, 소외된 계층에 거리를 둔 지 오래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 개신교 목사는 “가난한 집 애들이 불국사나 가지.”라고 이야기해 비난을 받았다. 지난 6월 열린 성소수자 거리 축제에서는 어느 개신교인이 난입해 ‘동성애 하면 지옥 간다’는 피켓을 들며 행사를 반대하기도 했다. 


변화 대신 기득권을 택한 주류 개신교는 그 신도 수가 점차 감소하고 있다. 반면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변화를 결단하고 실행한 가톨릭은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다. 통계를 살펴보아도 가톨릭 교인들은 점차 숫자가 늘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본래 ‘세상의 위기’가 아닌 ‘교회의 위기’에서 출발했다. 이 점은 주류 개신교에도 중요한 시사점이 될 수 있다. 

 

글 백승호(사민저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