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아닌, 하지만 행복한 나라 코스타리카
다니엘라 인터뷰 II - 우리와 같은, 그리고 다른


 

 

인구 480만 명에 1인당 국민소득(구매력 기준) 1만3천 달러로 한국의 절반인 코스타리카에서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데 돈이 별로 들지 않는다. 아파서 병원을 찾을 때도 금전적 부담이 없다.

 

흔히들 사회민주주의나 복지국가에 관해 이야기하면 보통 스웨덴 등 부유한 나라를 떠올리면서 우리는 아직 ‘시기상조’이며, ‘부자 나라들’이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하지만 코스타리카의 사례는 우리의 관성적인 사고방식에 의문을 갖게 한다. 코스타리카는 우리보다 낮은 국민소득의 나라인데도 세계에서 손꼽는 행복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러나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행복 지수 세계 1위 코스타리카가 천국은 아니라는 판단이 든다. 코스타리카의 최저임금은 바로 옆의 과테말라와 니카라과, 멕시코 등 주변국보다 높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최저임금의 절반에 못 미친다. 물론 그 최저 임금으로 생활하는 이들의 대부분이 코스타리카인이 아니라 니카라구아, 과테말라 등 주변국에서 들어온 이주 노동자라고 한다. 게다가 통계 수치만 보자면 빈곤층 비율이 인구의 17.8%로 14%대인 한국보다 약간 높다. 그리고 수도 산호세의 물가도 매우 높아서 서울의 물가와 불과 27% 차이난다고 한다.

 


 
   
 
 
 

한국은 교육열이 높다고 알려졌어요. 하지만 높은 교육열이 단순히 ‘배움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기 때문’이라고 보기는 힘들어요. 한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의미는 임금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의미가 되고요. 낮은 사회 계층으로 살아야 한다는 의미가 돼요. 그리고 낮은 계층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실패한 사람’이라는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코스타리카에서는 어때요? 코스타리카에서도 대학을 반드시 가려하나요? 그리고 대학을 가지 않으면 먹고사는 데 문제가 많은가요?

 

= 코스타리카에서는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점원을 실패한 인생이라고 규정하지 않아요. 마찬가지로, 좋은 대학 나왔다고 상류층으로 보지도 않고요. 코스타리카 사람들을 크게 3 계층으로 분류할 수 있어요. 기업을 운영하거나 사회 요직을 차지한 상류층, 좋은 직업과 자산을 가지고 있어서 먹고 사는 데 크게 지장이 없는 중산층, 그리고 그 외의 사람들이요.

상류층은 보통 대학을 가지 않거나 아니면 해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요. 그리고 돌아와서 자기 부모가 운영하는 기업에 들어가거나 부모 직업을 물려받아요. 당연히 생활에 지장이 없죠.

오히려 중산층이 교육에 더 열을 올려요. 중고등학교 자녀에게 많은 돈을 쏟으며 좋은 대학에 진학시키려고 애쓰죠. 코스타리카는 국립대학이 소위 ‘명문대’인데 국립대학은 대부분 중산층 이상이 진학해요. 그렇게 국립대를 졸업한 중산층 자녀들은 다시 좋은 직업을 갖게 되죠.

저소득층 사람들은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국립대학에 진학하는 경우가 아니면 어쩔 수 없이 사립대학에 진학해야 하는데 사립대학 등록금은 매우 비싸요. 결국에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좋은 직장 갖기를 단념하죠. 그래서 코스타리카는 대학 진학률이 높지 않아요. 고등교육의 기회를 평등하게 보장하기 위해 만든 국립대학은 오히려 저소득층이 아닌 중산층 이상이 혜택을 보는 거죠.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분명 먹고사는 데 문제가 있고, 힘들게 살아야 해요. 가처분소득이 거의 없어서 부모에 얹혀사는 사람들이 많죠. 하지만 이미 ‘대학을 갈 수 있는가?’ 여부가 부모의 소득에 의해 정해져 있죠.

 

 

중산층이 자녀들에게 많은 돈을 쏟았기 때문에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고 했어요. 한국도 비슷한 상황이에요. 한국의 대학 진학률이 높기는 하지만 상위권 대학을 나와야지만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을 얻을 수 있어요.

그런데 상위권 대학을 진학할 수 있는 여부는 사교육 정도가 크게 좌우해요. 집에서 사교육을 시켜 줄 형편이 되지 않으면 좋은 대학을 갈 수 없는 상황이 굳어지고 있어요. 그런데 코스타리카에는 사교육이 없잖아요. 교육의 차이가 어디서부터 발생하는 건가요?

 

= 코스타리카의 공립 고등학교는 학비가 전액 무료에요. 하지만 여유가 된다면 공립학교 대신 사립 고등학교를 보내려고 해요.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의 커리큘럼이 많이 다르거든요. 코스타리카에서 영어는 매우 중요해요. 아시다시피 코스타리카는 지리적으로 미국과 인접해 있어요. 그리고 산업도 미국과 큰 관련이 있죠. 영어를 해야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을 가질 수 있어요.

그래서 사립 고등학교는 영어나 외국어를 중점적으로 가르치죠. 그런데 사립학교는 학비가 매우 비싸요. 그래서 자녀를 사립학교로 보낸 부모는 아이들이 반드시 좋은 대학에 진학하길 바라죠. 일종의 투자 개념이에요. 재미있는 것은 사립학교도 고급 사립학교와 일반 사립학교가 나뉘어요. 고급 사립 고등학교는 학비가 매우 비싸서 부유층 자녀들만 갈 수 있죠. 

 

 

디자인을 전공한다고 하셨는데요. 한국에서 ‘디자이너’는 소득도 낮고 근무환경도 힘든 편이에요. 코스타리카에서도 직업에 따라 소득과 근무환경에 차이가 나나요?

 

= 코스타리카도 비슷한 편이에요. 보통 공학 계열을 전공하면 소득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편이에요. 저처럼 디자인을 전공하게 되면 보통 공학 전공자의 절반 수준의 급여를 받아요. 순수 미술을 할 경우는 사실상 먹고사는 일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돼요. 그래서 제가 디자인을 전공하겠다고 했을 때 집에서 조금 반대했어요. 비싼 돈 들여 사립학교를 보냈는데 돈을 충분히 벌 수 없는 학과에 가려고 했으니까요.

 근무환경이 직종마다 차이 나지는 않아요. 법으로 규제하거든요. 저도 종종 야근하는데 한국 사람들만큼은 아니에요. 저녁 여덟 시까지 일해야 하는 상황이 가끔 있을 뿐이에요. 

 

 

한때 세계 최고를 자랑했던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2009년을 기점으로 하락세가 지속하고 있다. 대학 졸업장이 갖는 경제적 가치가 대학을 보내기 위해 투자해야 할 돈보다 낮아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비싼 학원비를 충당해야 명문대학을 갈 수 있는 한국과 비싼 사립학교에서 배워야만 국립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코스타리카. 대학에 진학해도 소득이 보장되지 않는 한국과 국립대학을 갈 수 없으면 사실상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월급 적은 직장을 가져야 하는 코스타리카. 두 나라는 다르지만 닮아 있었다.

  

월드팩트북 조사를 보면 한국의 출산율은 1.25명으로 전체 224개 나라 중 219번 째로 낮아요. 또 우리나라 통계청 조사를 보면 초등학교 입학생 숫자가 8년 만에 2/3로 줄었어요. 한국은 참 ‘아이 낳기 힘든 나라’예요.

젊은 사람들이 취업하기 힘들 뿐 아니라 취업을 해도 대기업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가처분소득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해요. 결혼할 여유도, 아이를 키울 여유도 없어요.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어떤가요? 코스타리카에서도 아이를 않낳으려 하나요?

 

= 코스타리카에서는 아이를 하나만 낳아 키우면 버릇 없이 자란다는 생각이 강해서 외동이가 별로 없어요. 중산층의 경우 둘에서 셋 정도 낳아 기르는 것 같아요. 많이 낳지는 않아요. 중산층은 자녀들을 보통 사립 학교에 보내려고 하는데 학비가 비싸서 많은 아이를 보낼 여유가 없는 거죠.

오히려 저소득층이 아이를 많이 낳는 편이에요. 특별히 자녀 계획 같은 걸 세우지 않거든요. 게다가 요새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어요. 엄마가 되는 고등학교 여학생들도 늘어나는 추세에요. 코스타리카는 가톨릭 문화권이기 때문에 피임에 대해 부정적이에요. 아이 낳는 일을 축복이라고 여겨요. 아마 그런 문화적인 이유가 클 거예요.  

 

 

저소득층이 많은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교육과 의료가 무상으로 제공되기 때문인가요?

 

= 아니에요. 아무리 의료와 교육을 국가에서 책임진다 해도 코스타리카의 물가가 정말 높은 편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생활하는데 돈이 많이 들어요. 당연히 아이가 많아지면 힘들어져요. 저소득층이 아이를 많이 낳는 이유를 코스타리카의 복지 때문이라고 보지는 않아요. 저는 오히려 “일단 낳으면 신께서 책임져 주신다”라고 말하는 코스타리카 사람들 특유의 낙천적 생각 때문이라고 봐요. 

 

 하지만 과연 다니엘라의 말처럼 코스타리카인들의 낙천적 태도 하나로 우리보다 높은 출산율을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1950년대의 그 가난한 시절에 우리의 할머니 세대는 아이들을 한 집당 5명씩 낳았다. “일단 낳으면 애들은 알아서 큰다”는 사고방식이 당시만 해도 지배적이었다. 그 이유는 아직 도시화가 덜되어 농촌의 마을 공동체와 자연의 품에서 아이들이 자라나던 시절인 까닭에 요즘의 우리 세대처럼 ‘돈을 들여서’ 아이들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원 같은 곳에 보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즉 마을공동체와 대자연이라고 하는 ‘무료 육아 인프라’가 당시에는 있었던 것이다.

코스타리카의 풍부한 대자연과 그리고 아직까지 유지되는 마을 공동체적 삶이 코스타리카인들의 낙천성과 높은 행복 지수의 또 다른 이유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톨릭 국가라면 낙태가 금지되어 있겠네요?

 

= 코스타리카는 법으로 정한 가톨릭 국가에요. 사람들은 낙태를 아주 큰 죄라고 생각해요. 살인과 맞먹는 죄라고 느끼죠. 여성주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요. 하지만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그걸 곱게 받아들이지 않아요.

굉장히 인기 있는 좌파 정당이 있었는데 선거 기간에 ‘낙태 허용’이라는 이슈를 꺼냈어요. 그러자 엄청난 비판을 받고 선거에서 참패했어요.

한번은 TV 프로그램에서 대통령에게 “낙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했어요. 대통령은 “우리 정부와 우리 정당은 낙태를 반대할 것이다. 하지만 나 개인의 의견을 묻는다면, 나는 허용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다”라고 말했어요. 그러자 그 대통령은 ‘살인자’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죠.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것은, 그렇다고 해서 낙태를 않하는 것도 아니에요. 실제로 비일비재하게 낙태를 하고 있죠. 하지만 사람들은 ‘낙태는 안된다’고 말해요. 그런 점에서 조금 이중적인 것 같아요.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여성이 아이를 갖는 경우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돼요. 법으로 보장된 출산 휴가(근로기준법상  출산 전과 출산 후를 합하여 불과 90일)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사업주가 많아요.

 심지어 아이를 가진 여직원에게 퇴사를 요구하기도 해요. 그렇게 힘들게 아이를 낳은 이후에도 보육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비싼 돈 주고 사립 보육시설로 보내야 해요. 코스타리카에서는 임신한 여성에게 보장하는 제도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 아이를 가진 코스타리카 직장인은 임신 기간에 7개월 휴가를 사용할 수 있어요. 그중 석 달은 유급 휴가에요. 이때 받아야 하는 정기검진, 의사와의 상담, 약값은 모두 무료이고요. 아이를 낳은 직후에도 마찬가지로 석 달간의 유급 휴가를 줘요.

 한국처럼 아이를 낳는다고 별도의 수당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보육 시설이나 유치원을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어요. 코스타리카에서도 아이 가진 직원을 해고하는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정말 흔치 않은 경우죠.

 

 

의료 복지가 정말 잘 준비된 것처럼 보여요. 한국도 의료보험 제도가 잘 마련된 나라 중 하나지만 국민건강보험의 보장 범위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사보험을 많이 들어요. 코스타리카에도 사보험이 있나요? 무상 의료를 시행하는 나라 중에서 ‘의료의 질’ 문제를 겪는 나라들도 꽤 있던데, 그런 문제는 없나요?

 

= 정말 특수한 병에 걸린 경우가 아니라면 코스타리카에서는 몸이 아플 때 돈 쓸 일은 없어요. 그리고 직장 다니는 사람이 병가를 낼 경우 석 달간 유급 휴가를 받을 수도 있고요. 의료와 관련된 돈을 개인적으로 지출할 일이 없으니 사보험에 가입할 필요가 없죠.

 대신 코스타리카에도 문제는 있어요. 큰 병에 걸렸는데도 해당 지역 병원에 전문의사나 의료기기가 없는 까닭에 진료를 3년 동안 기다리며 대기해야 할 때가 있어요. 심지어 영영 치료 못받는 경우도 있어요. 최근에 이런 문제를 이용해서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국가 의료보험제도를 개인부담 체제로 바꾸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하지만 일부 부자들을 제외하고는 동의하지 않아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코스타리카는 분명 ‘천국’은 아니었다. 여전히 돈이 개인 삶의 많은 부분을 좌우했고 그래서 상당수 사람들의 삶은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낙천적 국민성’ 때문에 그들이 행복하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 않을까?

코스타리카는 아직 충분한 경제적 평등을 달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와는 달리 의료와 어린이 보육, 산모 보호 등에서 충분한 복지국가를 이룩하고 있었다. 노동시간, 근무시간도 우리보다 훨씬 짧았다. 우리와는 달리 낙오자들, 실패자들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사회안전망이 구축되어 있는 것이다. 코스타리카 사람들의 높은 행복 수준은 바로 그 ‘사회적 배려’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3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글/백승호 (사민저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