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타리카와 한국 대학생이 만나다
다니엘라 인터뷰 I - 티카(tica), 분쟁을 두려워하는 낙관주의자



 

한국의 16강 탈락으로 일찌감치 식어버렸던 월드컵 열기였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이번 대회 강력한 다크호스였던 코스타리카 대표팀의 선전을 지켜보았다. 코스타리카는 죽음의 조에서 강호 우루과이와 이탈리아를 차례로 꺾고 조 1위로 가장 먼저 16강 행을 결정지었다. 코스타리카 축구는 2002년 한국축구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 코스타리카 대표팀을 응원하는 한국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코스타리카는 한국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나라이다. 우리나라 인터넷을 검색하면 대부분 축구와 관련된 정보만 나온다.

 

코스타리카는 정치적으로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한다고 한다. 코스타리카에는 군대가 없다. 또한 2012년에 삶의 질 세계 1위를 달성했다. 히말라야의 부탄과 함께 코스타리카는 삶의 질과 행복도 순위에서 세계 1위 아니면 2위를 항상 유지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나라의 절반 가량인데도 불구하고 무상 교육과 무상 의료를 시행하는 복지국가이기도 하다. 


코스타리카 국립대학(UCR)에는 한국학 과정이 있다. UCR에서 한국학을 공부하던 다니엘라(24)는 이번 여름 한국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자 한국에 방문했다. 다니엘라는 전태일을 아는 코스타리카인이며 또한 ‘야광 토끼’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 뮤지션의 노래까지 찾아 들을 만큼 한국에 관심이 많은 외국인이다. 

 

사민저널은 한국의 대학생들과 다니엘라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시종일관 웃고 떠드는 즐거운 분위기였지만, 나누었던 이야기는 제법 진지했다. 다니엘라에게 전해 들은 코스타리카 이야기는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자료보다 훨씬 더 자세하고 새로웠다. 한국을 열심히 공부하는 다니엘라도 ‘실제 한국인’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때로는 놀랐고 때로는 공감했다. 


* 티카(tica)는 코스타리카인을 부르는 애칭이다.



   
 


  • 이번 월드컵에서 코스타리카가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코스타리카 국내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 우리 대표팀이 그렇게 선전을 거둘 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어요. 처음부터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역대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낸 적도 없어서 기대도 하지 않았어요. 우루과이와의 첫 번째 경기에서는 정말 흥분을 감출 수 없었지만, 운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이탈리아는 이길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이기더라고요. 그때부터 우리 팀을 신뢰하기 시작했죠. 


  • 코스타리카 대표팀은 특별히 유명한 선수도 없었는데, 선전했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 감독과 선수들 때문이죠. 새로 부임한 코스타리카 감독은 매우 열정적이에요. 승부욕도 강한 사람이기 때문에, 지는 걸 용납하지 않죠. 선수들도 정말 열심히 해줬어요. 조엘 캠벨 같은 해외파 선수들이 합류하니까 국내 선수들도 주전 경쟁에 더 열심히 임했던 것 같아요. 코스타리카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만 있었다면 아무래도 우물 안 개구리였겠죠?


  • 코스타리카에서 축구가 인기가 많은 스포츠인가요?

= 축구 경기가 있으면 온 가족이 축구를 보러 가요. 당신이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코스타리카에 오면 아마 축구를 볼 수밖에 없을 거예요. 코스타리카에는 정말 많은 축구 클럽이 있어요. 1부 리그에는 열 개가 넘는 팀이 있고요. 2부 리그도 많은 팀이 있어요. 축구는 코스타리카의 국민 스포츠죠.


  • 축구에 대한 국민의 열기가 대단해 보이는데, 정부도 축구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나요?

= 아니에요. 축구에 대해 따로 정부가 지원하는 부분은 없어요. 그냥 사람들이 축구를 정말 좋아할 뿐이에요. 프로 선수로 성장하지 못하면 직업을 얻기 힘들어요. 그래서 축구를 한다고 하면 “너 뭐 먹고 살래?” 라는 질문을 받아요. 축구 선수들 대부분이 가난한 가정 환경에서 태어났어요. 그래서 정말 겸손해요. 작은 선물을 하나 건네줘도 뛸 듯이 기뻐하더라고요.


가장 좋아하는 축구 선수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다니엘라는 ‘전부’라고 이야기하며 즉답을 피했다. 그래도 한 명만 꼽으라고 하니까 아주 즐거워하며 조앨 캠벨이라고 이야기했다. 조앨 캠벨은 영국 유명 축구 구단인 아스널FC에서 뛰던 선수다. 아마 한국의 박지성만큼 인기가 많은 축구 선수인 것 같다. 


  • 코스타리카는 2012년 영국 NEF에서 발표한 행복지수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혔어요. 여기에 대해서 동의하시나요? 

= 맞는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어요. 저는 코스타리카에서 태어난 걸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운 좋게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고 열심히 일하면 신분상승도 할 수 있어요. 코스타리카는 군대와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곳이에요. 그리고 모두가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어요. 한국만큼 사는 것에 대한 압박이 심하지 않아요. 때때로 코스타리카에서 태어난 것을 일종의 ‘특권’이라고 생각해요. 노동 환경도 괜찮은 편이에요.


  • 단서를 달았어요. 아닌 부분은 어느 것이 있나요?

= 코스타리카는 아직 발전할 것이 많이 있어요. 지하철도 없고 대중교통도 불편해요. 정부의 부정부패도 심각한 편이에요. 고쳐야 할 문제들도 많아요. 그런데 보통은 문제를 외면하는 경향이 있어요. 뇌물 같은 것도 비일비재하죠. 어머니는 제약회사와 약국을 감시하는 공기업에서 일하는데, 하루는 괴한이 총과 가족사진을 두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더라고요.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달라는 협박인 거죠.


  • 코스타리카 사람들이 문제를 외면한다고 했어요. 코스타리카 사람들이 행복하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문제나 걱정거리를 회피한다고도 할 수 있나요?

= 우리는 식민지 시대를 겪었지만, 그 독립을 우리가 직접 쟁취한 것은 아니에요. 1948년에 내전을 겪었고 우리는 군대를 없앴어요.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지금 주어진 행복이, 그리고 군대가 없는 상황이 가져오는 평화가 계속 이어지길 원해요. 무언가 싸우거나 복잡해지는 상황을 맞기 싫은 거죠. 그래서 문제를 회피해버리는 경향이 있죠.

 

  • 일종의 국민 정서라고 봐도 되는 건가요? 

= 네 그렇게 볼 수 있죠. 


실제로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회피, 외면 같은 단어들이 자주 나왔다. 정치적인 문제가 발생해도 사람들의 비난이 일주일 넘게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었던 행복지수 1위 이면에는 ‘분쟁을 두려워하는 낙관주의’가 있었다.


  • 코스타리카 정치 역사상 커다란 사건이 두 번 있었어요. 그중 하나가 아까 말씀하신 내전이고 또 다른 하나가 1870년 과르디아 장군의 군부독재 통치에요. 아시다시피 한국도 박정희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고 20년 가까이 군사독재가 이어졌어요. 그런데 한국에는 그 고도 성장 기간이 박정희의 군부 정권 때문이라며 찬양하고 향수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 코스타리카에서는 어떤가요?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군사 독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나요? 과르디아 독재 시절에도 공은 분명히 존재하잖아요.

= 그런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어요. 젊은 사람들은 물론이고 나이 드신 분들도 군사독재 시절을 향수하지 않아요. 정확히 따지면 그 시절이 특히 힘들었던 시기도 아니었기 때문에 군부 독재 시절이라기보다는 역사의 한 맥락으로 인식하죠.


  • 그러면 군부 독재를 막을만한 장치 같은 건 따로 있나요?

= 아니요 그런 것은 따로 존재하지 않아요. 코스타리카의 사회 시스템을 신뢰하는 거죠. 특별히 법적인 장치를 마련하지 않더라도 군부 독재가 다시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요. 하지만 한국의 군부독재는 코스타리카와는 많이 달랐어요. 한국의 군부 독재를 공부했을 때 굉장히 놀랐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죠.


  •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게 된 건가요?

= 1948년 칼데론의 기독사회통합당이 선거에 패배했는데 그 결과에 승복하지 않았어요. 이에 반발한 피게레스는 시민군을 조직했어요. 40여 일간의 전투 끝에 피게레스가 승리했죠.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지만, 이것을 ‘내전’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조금 의문이에요. 기간도 길지 않았고 다른 나라에 비해서 희생자의 수도 비교적 적은 편이었어요.


  • 내전을 일으킨 칼데론은 역사적으로 안 좋은 평가를 받겠네요?

= 그렇지 않아요. 저희 외할아버지는 칼데론을 지지하셨어요. 반대로 저희 아버지는 피게레스를 좋아했고요. 양 대통령 모두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했고, 정치적 방향은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피게레스가 조금 더 진보적이었지만요. 칼데론을 부정적으로만 평가하지는 않아요. 내전을 일으킨 피게레스도요. 양 대통령 모두 공과가 분명히 있거든요. 우리는 그것을 개별적으로 판단해요. 


  • 피게레스가 집권하고 군대가 폐지되었어요. 결국, 폭력으로 만들어 낸 권력이 군대와 폭력을 종식했어요. 일종의 아이러니인데요. 이것에 대해서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 딱히 이 부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결과적으로는 폭력이 사라진 셈이니 좋은 것 아니겠어요? 


  • 군대가 사라졌는데 코스타리카 사람들이 전쟁을 두려워하지는 않나요?

= 저희는 군대 대신 외교로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전쟁이 난다는 것은 상상해본 적도 없어요. 코스타리카 사람들이 분쟁을 회피하려고 해서 더욱 그럴 거에요. 전쟁이 난다는 것은 아마 그때 가서 생각하게 될 것 같아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분명히 그들은 자기 삶에 만족했고 즐거워했다. 하지만 그들은 삶을 위협하는 많은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 사회에 대한 신뢰와 방관. 그 어딘가쯤에 코스타리카인들이 있었다. 


(2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글/백승호 (사민저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