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과 통일, 남북 평화공존
사회민주주의와 민족 문제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근대의 정치적 기획은 보편적 가치와 원리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그 정치적 실천의 기반은 어디까지나 민족국가 또는 국민국가(nation-state)이다. 한국의 경우 선진국의 간섭으로 식민지와 분단을 경험하였으며 아직도 분단이 지속되는 지구상의 유일한 나라이다. 애초 분단을 낳은 동서 간 냉전구조는 이미 사라졌고 주변 강대국들 간의 대립도 이념대립으로부터 경제적 이해관계 대립으로 그 양상이 변화하였으며 대립의 축도 미-소에서 미-중으로 변화하고 있다. 

여기서 북한과 그리고 한국의 민족지상주의자들이 매우 중시하는 ‘민족자주성’을 확보하는 길도 과거와는 매우 다른 환경에서 전개되고 있다. 21세기 사회민주주의의 기획에서 민족 문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요구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몇 단계로 나누어 민족문제에 대해 21세기 한국의 사회민주주의가 견지해야 할 원칙과 그 근거를 확인해보자. 그 초점은 사회민주주의의 5대 가치 중 하나인 ‘평화’의 가치가 어떻게 한반도의 특수성에 적용되는가이다.

민족과 민족국가, 남북통일

근본으로 돌아가, 먼저 근현대 민족국가의 존재이유를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의 경우 ‘민족국가’를 대체로 단일 민족국가로 이해하지만 미국은 다인종, 다민족이 결합되어 있는데도 하나의 국민국가로 성립할 수 있었다. 유럽의 경우 근대 이전에는 지방권력이 난립했는데, 근대 사회의 발전과정에서야 비로소 인종적, 언어적으로 단일한 민족을 형성하는 정치적 통일을 이루고 그 기반 위에서 근대화를 이룩하거나, 근대화 과정과 동시에 국민국가로서 정치적 중앙집권화를 성취했다. 근대 자본주의 시장경제 발전의 필요성 때문이었다.

이에 반해 한반도는 일부 이민족의 유입이 있었지만 한족(韓族)이 절대다수였고 전근대 시대에 이미 중앙집권적 민족국가로서 존재했다. 일제의 강점과 외세 간섭에 의한 분단은 이 땅에 저항적 민족주의를 촉발했다. 광주학살을 미국이 방조한 사실이 알려지자 잠자던 민족주의 감정이 되살아난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작은 계기라도 만나면 우리의 민족주의 감정은 언제든 다시 불타오르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저항적 민족주의에 지나치게 경도된 인사들은 근대화의 과정이 반드시 하나의 민족국가를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들은 지금과 같은 분단 상황에서는 외국의 간섭이 불가피하고 따라서 민족의 자주성 확립과 경제적 근대화의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남북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많은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아마도 이러한 생각이 극단적인 민족지상주의, 즉 통일지상주의가 감정을 넘어선 호소력을 갖는 논리적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잘못됐다.  

서양의 경우 경제적 필요가 국민국가-대체적으로 민족국가-의 탄생을 이끌었다. 국민국가란 세계 국가의 대응 개념이 아니라 지방권력, 지방정치체에 대한 대응 개념으로서 성립했다. 이 때 대체로 동일한 언어와 문화 기반을 가진 동일한 인종이 통일 운동의 계기를 제공하면서, 국민국가 건설운동은 대부분 민족주의 운동에 의해 추동됐다. 민족의 정서에 호소함으로써 한 나라의 통일을 향한 정치적 에너지를 결집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길이었기 때문이다. 

분명한 사실은, 만약 근대 산업의 생산력 발전이 통일된 시장과 지방색을 탈피한 공통의 소통수단(단일 언어), 표준적인 기초 지식과 표준적 숙련 등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농업 같은 정주 경제와는 달리 근대의 산업화가 끊임없이 지역과 직종을 이동하는 대량의 인구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면, 국민국가를 형성하고자 하는 운동, 민족주의 운동은 애당초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근대적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불가결 조건으로서의 공통의 언어와 기초지식·숙련, 추가적인 전문기술교육, 단일한 행정 체계 등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중앙권력이 필요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도 세계는 무수히 많은 지방공동체들로 나누어져 있었을 것이다. 민족은 하나여야 한다는 생각은 전근대 시대만 하더라도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었으며 민족이라는 개념도 희박했다. 근대에 들어 자본주의와 국민국가를 건설할 필요에 따라 나타난 민족주의 운동이 역으로 민족의식을 낳았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1)

이렇게 본다면, 근대 이전의 조선이 강력한 중앙권력에 의해 지배되는 하나의 통일국가를 이미 수립하고 유지하고 있던 점은 사실 근대화를 위한 최적의 조건이었다. 전근대 국가들 중에 민족적 단일성과 언어의 통일성, 최고 수준의 문화와 문자 체계까지 갖춘 경우는 세계적으로 희귀했다. 그만큼 조선은 전근대적 기준으로 선진 문명이었고, 그런 만큼 인구 규모도 상당히 커서 근대화와 산업화를 위한 적정한 시장 규모를 제공할 전제 조건도 이미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듯 근대화를 위해 예외적으로 우수한 전제조건을 갖춘 조선이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이어서 나라가 분단되었다. 해방 이후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은 남북 분단의 조건에서 진행되었다. 남북한 간의 체제 경쟁이 심화되고 그것이 질곡으로 작용하면서, 한국은 경제의 발전 단계에 맞는 새로운 사회 체제를 발전시키지 못해, 여러 후진적이고 왜곡된 요소들을 쉽게 제거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점은, 근대화와 산업화, 민주화가 민족의 통일 없이는 완수될 수 없다고 보는 일부 민족지상주의자들의 생각은 옳지 않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민족적, 언어적, 문화적으로 같지만 양국이 통일 독일로 가지 못했다고 해서 근대화에 실패한 사실은 없지 않은가.(2) 필요한 것은 근현대 산업의 발전에 순기능적인 단일의 국민국가일 뿐이다. 정서적 민족주의 감정에만 이끌릴 것이 아니라 냉정하게 민족주의 이념의 기능과 한계를 판단해야 한다. 

통일지상주의와 흡수통일론 - 동전의 양면  

남북통일이 모든 것을 제치고 달성해야 할 지상 명령이 아니라는 점을 또 다른 차원에서 생각해보자.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동일한 언어와 문화, 역사적 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두 나라는 주변 강대국에 휘둘리지 않으며, 경제와 정치는 각각 자립적이고 또한 각각 번영과 안정, 평화를 누리고 있다. 두 나라가 서로 대립하는 것도 아니다. 

이에 반해 현재의 남한과 북한은 경제적으로 취약하며, 그런 나라가 둘로 나뉘어 서로 대립하고 있으니 당연히 주변의 강대국들에 휘둘리면서 결과적으로 경제적, 정치적 자주성을 유지하기기 힘들다. 민족지상주의자들은 남북통일만이 자주성을 확보할 수 길이라고 생각하는데, 하지만 그것은 남북한이 1945년의 해방 직후처럼 빈곤에 허덕이던 시절에나 타당한 생각이다. 오늘날의 한국(남한)은 과거처럼 빈곤한 약소국이 아니며, 정치경제적, 군사적 관점에서 볼 때, 세계 10대 강국으로 떠올랐다. 

그에 반해 오늘날의 북한은 중국의 도움이 없이는 경제적으로 생존이 불가능한 지경이고, 이미 많은 사람들은 북한이 중국의 지배하에 들어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것은 남북분단 상황과 관계없이 나라가 경제적으로 빈곤하면 자주성을 상실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남북이 분단되어 있기 때문에 예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거꾸로, 남한 또는 북한이 각자의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발전, 그리고 정치적 안정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 주변 강대국에 종속되고, 그 결과로 남북분단 상황이 더욱 심화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통일시장주의는 시대착오적이다. 현재 한반도 전체에서 민족의 자주성을 위협하는 최대의 요인은 북한 경제의 쇠락과 만연한 주민 빈곤, 그리고 중국처럼 사회주의를 유지하면서도 적절한 개혁을 통해 경제적 번영을 모색할 역량, 즉 북한 지도층의 역량의 결핍이다. 

구소련과 개혁 전의 중국의 국가사회주의 경제체제는 서구 자본주의와의 경제 경쟁에서 패배했고 북한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민족지상주의 또는 통일지상주의자들처럼 북한 정권을 호의적으로 보면서 그들을 적대가 아니라 민족 통일의 파트너로 보자고 말하는 것은 자칫 수구적 흡수통일 프레임에 쉽게 말려들 수 있다. 북한 공산주의를 증오하는 수구 세력이 남북통일을 반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은 단지 조속한 흡수통일을 원할 뿐이다. 그들이 보기에는 북한 체제를 유지하고 그럼으로써 남북통일을 방해하는 것은 북한의 권력 집단 이외에는 없다. 따라서 그들은 북한의 일반 민중을 포함해, 그 누구도 자유민주주의적 통일국가에 대해 반대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치경제적으로 실패한 공산주의라는 현실을 외면한 채 민족지상주의자들이 남북통일을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그것은 결국 흡수통일이라는 보수의 악령이 장악할 무대를 만들어주는 꼴이 되어 버린다. 더구나 그 경우 남한과의 체제 대결에서 우위를 이미 상실한 북한의 집권 세력은 더욱 방어적으로 대응하게 되며, 더욱 적대적인 태도를 보일 개연성이 높아진다. 또한 중국이나 베트남식 개혁·개방을 시도하는 것도 더욱 어렵게 된다. 개혁·개방을 시도하는 순간 자신의 존재 이유를 상실할 위험에 처하기 때문이다. 체제대결 구도의 비극이다.

최근 박근혜정부의 ‘통일대박론’은 흡수통일론의 최신판이다. 보수언론과 학자들은 ‘흡수통일을 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사실상 북한을 경제적으로 장악하여 북한의 광물자원과 인적 자원을 자유롭게 이용하고 국제적인 동북아경제권을 형성하면 어떤 이익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러한 질문 자체가 한국 자본주의와 대자본의 관점, 자본의 이익이라는 관점을 깔고 있으며 그만큼 북한 입장에서는 위험한 담론으로 다가올 것이다. 공격적인 한국 자본주의가 자신의 대내적 모순과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강대국이 이미 지배하는 한반도 외부가 아니라) 한반도 내부의 약한 지역으로 ‘제국주의적’ 팽창을 하겠다는 의미이다. 

한국의 수구 세력은 항상, “북한 체제가 존재하는 한, 한국 자본주의의 내부 모순과 갈등은 그 해결을 한없이 유보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이것은, ‘남북분단 상황에서는 통일이 최우선 과제이며, 남한 사회 내부의 문제를 내부적으로, 즉 통일에 선행하여 해결하려는 그 어떤 사회민주주의적 시도도 반통일적’이라고 간주하는 진보적 민족지상주의자들의 생각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수구적 흡수통일론과 진보적 통일지상주의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할 수 있다. 

통일이 아니라 평화와 공동번영이 우선

그렇다면 민족문제와 통일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남한)을 선진문명 복지국가로 끌어올림으로써 한국사회의 내부적 대립구도를 타파함과 동시에 정치경제적 번영과 안정을 달성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대외적인 자주성을 확보하며, 그것이 달성되는 시점에 즈음하여 비로소 한반도 통일국가를 추구해나가는 것이다. 이것은 급진적 혁명보다는 지속적, 점진적 변화를 추구하는 정치운동으로서의 사회민주주의가 자신의 주요 과제의 하나로 남북평화와 남북의 공동번영,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하는 남북통일을 설정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민주주의의 5대 가치 중 하나인 평화의 원칙은 여기에서도 예외 없이 적용돼야 한다. 한 개인의 경우에도 스스로를 훌륭한 인격체로 거듭나게 하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지금까지 다투던 사람을 용서하게 마련이다. 그 사람의 인격이 이미 훌륭해져서가 아니라 상대방과의 싸움과 대결의 구도에 말려있는 한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한국 사회를 내부적으로 변화시키는 주체로서 나서고자 한다면 반드시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 협력의 노선을 내세워야 한다. 한국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미국 정부마저 설득하여 북미간의 평화와 화해, 협력의 노선으로 나아가게 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남북 간, 북미간의 평화와 화해, 협력의 노선을 내세워야 하는 까닭은 북한의 현 정권과 그 지도층이 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가치에 부합하기 때문이 아니다. 북한의 현 지도층은 사회민주주주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사회민주주의자자들이 뉴라이트 수구세력과 동맹하여 반북·반공 운동에 나서는 것은 보수주의자들의 흡수통일론에 말려드는 것이며, 그것은 남북 간 체제대결과 군사대결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게 된다.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에서 장기적으로 사회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도, 당장 한반도에 필요한 것은 북한과의 평화공존과 공동번영의 노선이다. 

사회민주주의가 한국을 동아시아의 문명복지국가로 끌어올리고자 노력하고 분투하는 도상에서 북한은 결코 대결과 적대의 대상이 아니다. 지금의 북한을 적대적으로 부정해봐야 “맞아, 그러므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만능 한국자본주의가 더 우월한 거야”라는 보수적 흡수통일론 말고는 결론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국 사회민주주의는 남북한 및 북미 간 평화조약과 평화공존, 전쟁상태종식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남북 간, 북미 간 평화공존 체제가 확보될 경우, 북한은 핵무기로 자신을 지키려는 노선을 자연스럽게 포기하려는 마음을 조만간 갖게 될 것이다. 현재 일부 진보 인사들은 ‘핵무기 반대’를 최우선 요구로 내세우면서, 북한이 핵무장을 포기해야 그 이후에 비로소 남북 간, 북미 간의 화해와 평화공존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핵무기부터 내려놓으면 화해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남북 간, 북미 간 대립구조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으며 그것은 오히려 시대착오적인 수구 세력과 흡수통일론자들의 입장만 강화시킬 뿐이다. 그런 주장으로는 북한 내부의 강경한 수구세력의 입장도 약화시킬 수 없다. 북한의 핵무장 포기를 자연스럽게 달성하기 위해서도 그에 앞서 달성해야 하는 과제는 남북 간 및 북미 간 평화공존 체제 수립인 것이다.

남북 간의 화해 협력은 한국경제와 북한경제에 엄청난 경제적 효과를 낼 수 있으며, 양측 경제의 공동 번영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남북한이 화해와 평화공존에 나서야 하는 까닭은 그 경제적 효과 때문이라기보다는, 바로 평화공존과 공동번영의 원칙이 사회민주주의와 진보의 가치관과 세계관의 입장에서 가장 ‘올바르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파생되는 다양한 경제적 효과는 ‘선물’이다. 

만약 남북한이 평화공존과 함께 공동으로 번영하는 관계가 구축된다면, 그리고 그 유리한 조건에서 한국에서 선진문명 복지국가가 탄생하고 더 나아가 스웨덴 등 북유럽 수준으로 발전한다면, 북한의 인민들도 언젠가는 남한에서 달성된 선진문명 복지국가에서처럼 살고 싶어 하는 정서와 분위기가 무르익게 될 것이며, 북한에서도 사회민주주의 정치가 본격적으로 등장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따라서 남한과 북한 모두에서 선진문명 복지국가가 성장하는 것은 남북 간의 평화통일을 궁극적으로 보장하는 길이다. 

사회민주주의가 한국에서 큰 정치 세력이 되고 더 나아가 선진문명 복지국가로 이 나라를 이끌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을 가진 세력으로 성장한다면, 사회민주주의가 이끌어가는 미래의 대한민국은 한반도를 둘러싼 험난한 국제정세 속에서 우리 민족의 정치경제적 자주성을 확보하고 남북한이 경제적으로 공동 번영하는 길을 찾아나가기 위해 더욱 분투할 것이다. 사회민주주의와 선진문명 복지국가의 길만이 한국이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북한도- 미국과 중국 어느 한쪽에 쏠리지 않으면서 사실상의 외교적, 군사적 중립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사회민주주의는 한국과 한반도 전체에서 미국과 중국, 일본 등의 패권주의에 반대하며, 이를 말로만이 아니라 실천적으로 관철시키기 위해서도 한반도와 동북아 전체에서 평화공존과 정치경제적 자주성, 그리고 공동번영을 보장하는 새로운 국제적 틀을 제시해야 한다.

 

글/조원희

국민대 경상대학장으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대 경제학 박사를 거쳐 (사)복지국가소사이어티 편집위원장을 역임했다. 대표적 저서로 <한국경제의 위기와 개혁과제>(공저·1997), <사회민주주의선언>(공저·2012) 등이 있다.

     

(1) “민족을 발생시키는 것은 민족주의가 유일하며 다른 방법으로는 안된다”(겔너, 2009, p.103) 겔너는 산업사회가 되어 일반적 사회상황이 고도문화(표준화되고, 동질적이며, 중앙에서 뒷받침되는 문화, 엘리트만이 아니라 전체 주민에게 보급되는 고도문화)에 이바지하는 하나의 단위가 생성되고 여기서 민족의식이 발생한다고 본다. 근대 자본주의는 세계성을 띄지만 어디까지나 국민국가 단위로 동질화, 표준화가 이루어지고 그것을 단위로 세계체제로 구성된다. 이 속에서 최근 초국적 인류(transnational human)의 출현이 회자되고 있는데서 보듯이 점점 더 보편적 세계시민이 성장한다. 민족국가는 말하자면 장차 ‘세계국가’로 발전하는 과도기적 공동체라 할 것이다.

(2) 19세기 초중반에 오늘날 독일과 오스트리아 지역에서는 대독일주의의 이름하에 오스트리아를 포함한 큰 규모의 통일을 지향하는 정치적 움직임이 매우 강했다. 이에 대하여, 프러시아를 중심으로 (오늘날의 독일에 해당하는) 소독일주의가 맞섰다. 1871년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독일군(프러시아가 주도한 소독일 연합군)은 소독일주의에 따른 독일제국을 선포하였다. 1938년 히틀러의 나치독일은 오스트리아를 합병하여 대독일주의를 마침내 구현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의 독일-오스트리아를 패배시킨 승전 연합국들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합병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 후 오늘날까지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분리(분단)된 상태에서 정치경제적 안정과 번영을 거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