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주의는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 <2편>
실질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자유, 그것을 위한 새로운 경제민주주의를 이야기하자

 

※ 이 기사는 2013년 1월, 경제민주화를 주제로 4회에 걸쳐 작성한 글(사회민주주의센터 게재)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월가 점령 시위 중에 한 시민이 '스파르타쿠스'라는 단어가 새겨진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프리티 우먼과 주주자본주의

줄리아 로버트가 인기를 얻은 ‘프리티 우먼’(pretty woman)이라는 영화에는 1980년대 후반의 미국에서 선량한 기업을 조각조각 해체하여 지역공동체의 삶을 파괴하는 나쁜 자본가가 등장한다. 기업사냥꾼인 리차드 기어 그 인물로 나오는데, 실제 모델은 칼 아이칸이라는 유명한 기업사냥꾼이다. 지금도 미국에는 칼 아이칸처럼 기업사냥 즉 적대적 M&A 위협을 전문적으로 일삼으며 떼돈을 버는 사모펀드 운영자가 많다. 2012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였던 롬니 역시 비슷한 사모펀드 운영으로 억만장자가 된 자이며, 그는 월스트리트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월가 점령’ 운동을 조롱하곤 했다.

칼 아이칸은 2006년 초 우리나라의 KT&G(과거 담배인삼공사)에 대해서도 적대적 M&A 위협을 가했다. 우리 사회에는 재벌기업과 공기업의 ‘비효율적인 기업지배구조’ 때문에 1997년 외환금융위기가 발생했다는 주류경제학식 경제민주화론이 지배하면서 기업지배구조 개혁이 시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이상적 모델로 간주된 것은 지배주주, 대주주가 없도록 주식 소유가 완전히 분산되고 집중투표제와 사외이사제 등을 통해 소수주주의 권리 및 이익 관철이 용이한 주주자본주의적 기업지배구조였다. 과거 공기업이던 담배인삼공사(KT&G)와 한국통신(KT), 그리고 포스코 등이 민영화 과정에서 그런 식의 기업지배구조로 바뀌었다.

소액주주의 이익이 완벽하게 관철되는 민영화가 김대중, 노무현 정부 하에서 완료된 2002년과 2003년에 KT와 KT&G는 경제민주화 시민단체들로부터 ‘최우수 기업지배구조상’을 연이어 받았다. 시민단체를 대표해 상을 준 강철규 교수는 노무현 정부 출범 후 공정거래위원장이 되어 재벌개혁을 이끌었다. (그 후 2012년 4/12 총선에 즈음하여 강철규 교수는 이른바 민주당내 친노 세력의 추대에 의해 공천심사위원장으로 활동했고, 그 총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한 결정적 원인인 친노 패권주의 공천을 실무 지휘했다).

그는 KT와 KT&G와 같은 민영화 공기업들이야말로 재벌개혁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모델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아이칸의 적대적 M&A 위협에 대해서도 “적대적 M&A 과정의 공격과 방어 과정에서 투명성이 높아지고 지배구조가 개선될 것”이라며 기업사냥 펀드의 투기적 이익추구를 옹호했다.

경제민주화·재벌개혁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해온 여러 학자들 역시 KT와 KT&G야말로 이상적인 기업지배구조 모델이며, 재벌개혁은 궁극적으로 KT와 KT&G 모델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즉 재벌의 계열사들을 독립기업화하고, 그 독립 대기업들에는 경영권 방어를 위한 최소한의 지배주주도 존재하지 않도록 하며, 그리하여 소수주주와 기업사냥 펀드가 ‘투자자 이익 극대화’를 위해 마음껏 자신들의 권리와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는 상태를 이들은 이상적인 모델이라고 말해왔다. 이들은 소버린의 SK그룹 공격에 대해서도 소버린의 편을 들었다.

실제 오늘날 KT와 KT&G, 포스코 같은 민영화 대기업들은 '주주이익 극대화‘ 경영의 선봉을 달리고 있다. 이들 회사의 이사회 의장은 골드만삭스 출신 등 미국 월스트리트의 이익을 대변하는 인물인 경우가 많으며, 매년 순이익의 절반가량을 현금배당과 자사주 매입 등의 형태로 주식투자자들에게 환원하겠다고 공개적으로 표방하고 있다.

무자비한 주식투자자 이익 극대화는 노동권 약화를 초래했다. 예컨대 KT의 주주자본주의적 민영화 과정에서 불과 수년 만에 6만의 정규직 종업원이 3만으로 줄었고 그렇게 대량 해고된 노동자들이 외주노동자와 비정규직으로 전락했다. KT는 지금도 무자비한 노동권 파괴로 유명하며 더구나 설비투자와 연구개발 등 장기투자에도 인색하다. 왜냐하면 주식투자자 이익 보호에 자칫 소홀하여 주가가 하락할 경우 아이칸 같은 기업사냥 펀드의 경영권 공격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재벌 빵집 논란과 함께 지난 1년간 경제민주화가 민주 세력의 최우선 과제로 다시 등장하면서 민주통합당은 재벌개혁과 함께 노동권의 신장과 비정규직 해결을 약속하였다. 그런데 과연 그 약속을 믿을 수 있을까? 문재인, 안철수 캠프가 그간 발표한 재벌개혁안은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출범 시와 거의 똑같다. 즉 펀드 의결권 강화와 집중투표제 강화, 순환 출자 규제, 금산 분리, 지주회사 규제 강화 등을 통한 소수주주권 강화와 적대적 기업사냥 활성화가 그 목표이며 결국은 주주자본주의 활성화를 겨냥하고 있다.
그렇다면 주주자본주의적 재벌개혁론자들이 여전히 꿈꾸는 재벌개혁의 이상향은 삼성과 현대차, 롯데 등의 재벌그룹을 부분 해체(즉 일부 계열사들의 분리·매각) 또는 완전 해체시키고,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삼성전자와 현대차, 롯데 등을 KT와 KT&G와 같이 단기투자자 수익 극대화, 즉 국내외 주식펀드 기업 사냥 펀드들의 낙원으로 만드는 것일 터이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99% 국민의 인권과 노동권을 위한 민주주의의 길이란 말인가?

   
 

재벌 규제 강화로 과연 중소기업을 살릴 수 있을까?

개혁적(진보적) 자유주의를 말하는 민주 인사들은 신자유주의 극복을 위한 대안적 이념으로 구자유주의를 제시한다. 구 자유주의를 상징하는 공약이 바로 문재인, 안철수 캠프가 가장 우선시한 정책이었던 ‘공정한 시장질서’였다. 그리고 재벌규제를 통해 달성되는 공정한 시장질서는 누구보다도 중소기업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해진다. 공정시장 우선론자들은 각종 중소기업 관련 통계들을 제시하면서, 중소기업들이 힘들어하는 이유가 주로 재벌계 대기업들의 하청단가 인하 때문이라는 논리를 전개한다. 그들이 제시하는 통계표와 논리전개만 들어보면 매우 설득력이 있다.

그렇지만 실제의 경제 현실, 산업 현실로 한번 들어가 보자. 신문 지상에서 흔히 삼성전자나 현대차 같은 재벌계 대기업들이 중국과 인도, 미국, 유럽 등지에 현지 공장을 세워 운영한다는 이야기를 읽는다. 그런데 그 신문 기사 바로 아래에는 삼성전자나 현대차에 납품하는 1차 협력사(1차 하청)들의 대부분이 해외로 동반 진출하고 있다는 기사도 등장한다. 실제로 그렇다.

그렇다면 공정시장 우선론의 주장에 의문을 품어보자 : 삼성전자, 현대차와 함께 해외로 동반 진출한 1차 협력사들의 매출과 수익이 과연 하청단가 인하 때문에 늘지 않고 있을까? 하청단가는 어디까지나 단가에 불과하다. 제품 단가가 깎이더라도 총매출 수량(해외공장까지 포함한)이 늘어나게 되면 총매출액과 그 수익이 늘어나는 것이 당연하다. 실제 삼성전자나 LG전자, 현대기아차 등과 함께 해외에 동반 진출한 하청협력사들의 국내외 총매출은 지난 10년간 크게 늘었다.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차 등 재벌계 대기업의 국내외 총매출이 지난 10년간 2배~4배로 늘었고, 그만큼 하청 물량 역시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정시장 우선론자들이 제시하는 통계표에는 하청협력업체들의 해외공장에서 발생한 매출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그것은 당연한데, 회계기준상, 해외 현지 법인은 법률상 독립법인인 까닭에 한국 본사의 매출액으로 계상되지 않기 때문이다. 해외 현지 법인에서 발생한 이익 역시 한국 본사의 영업이익으로는 잡히지 않고 (회계기준상 지분법 평가에 의해) 영업 ‘외’ 이익으로 잡힌다. 그런데 그 통계표들은 오직 중소기업의 ‘영업이익’만을 보여주고 있고, 영업이익의 하락을 근거로 중소기업들이 대기업들로부터 수탈당한다고 말한다.

더 결정적인 오류도 있다. 재벌계 대기업에 납품하는 1차 하청협력업체의 상당수가 이미 법률상 중소기업이 아닌 대기업으로 성장해 있다. 즉 이미 글로벌 중견기업(즉 히든 챔피언)으로 10년 전부터 성장해 있는 협력업체들이 부지기수다. 그런데 그들은 오직 (법률상) 중소기업으로 등록된 기업들의 통계만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제시하는 통계에 등장하는 중소기업들은 누구일까? 대부분 재벌계 대기업과 직접 계약한 1차 하청 협력기업이 아니라, 그 1차 협력기업과 계약한 2차 또는 3차 협력업체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1차 협력 하청업체들은 그 통계표에서 중소기업이 아닌 대기업(즉 중소기업을 수탈한다 하는)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들 2차, 3차 하청 회사들에서 발생하는 하청단가 인하 문제를 재벌계 대기업들을 규제하여 (그것이 바로 재벌 규제 강화인데) 팔을 비틀어 해결하겠다? 그것은 초법적 발상일 뿐만 아니라, 별로 큰 효과도 없다. 왜냐하면 그런 식의 재벌 규제 강화를 통한 하청단가 인상의 즉각적 수혜자는 2차, 3차 하청업체와 그 종업원들이 아니라 이미 매출과 수익성이 높은 – 따라서 종업원 임금 수준도 상대적으로 양호한 - 1차 하청업체들이기 때문이다.


 

주주자본주의와 영세자영업의 과당 경쟁

또한 주주자본주의와 결합된 잘못된 재벌 규제는 영세자영업자의 처지를 악화시킨다. 우리나라 경제활동 인구의 33% 즉 1/3 가량이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다. 즉 돈을 버는 이들의 1/3 가량이 식당, 술집, 호프집, 이발소/미용실, 카페, 문방구, 꽃집 등의 주인 또는 종업원이다. 자영업자들의 고달픈 살림살이는 곧 5천만 국민의 1/3이 살아가는 고달픈 삶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재벌 빵집 논란과 함께 여와 야,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모두가 빈곤한 영세자영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통닭과 커피를 아무리 팔아도 도무지 수익을 낼 수 없는 점포들, 달콤한 말로 편의점 창업을 꼬여놓고는 패망하면 막대한 돈을 약탈하는 프랜차이즈 지점들, 음식이 날개 돋친 듯 팔려도 망할 수밖에 없는 높은 임대료 문제 등이 그들의 이야기이다. 또한 가게를 운영하기 위해 빌린 은행대출, 카드대출의 연체와 신용불량자로의 전락, 채권추심 또한 그들의 이야기이다. 전체 자영업 창업자의 80%가 실패하여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그 중 상당수가 자살로 인생을 마감한다.

자영업자들의 삶은 왜 이렇게 힘든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영업에 뛰어들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영업에 뛰어들까? 그 이유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1997년의 외환위기 이후 허리 역할을 하는 중견 대기업들이 재벌개혁 과정에서 대거 퇴출되었고, 기업의 명예퇴직과 희망퇴직, 정리해고와 인력 절감도 상시화되었다. 어느 누구도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 결과 비정규직과 함께 생계형 자영업자가 급증하고 있다. 망한 자영업자들이 속출하는데도 여전히 무수한 사람들이 신규로 자영업에 뛰어든다. 뒤로 물러날 곳이 없는데도 앞에서 밀려드는 군중의 미는 힘을 이기지 못하여 절벽 가장자리에 선 사람들은 결국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참혹한 상황이다.

공정시장 우선론자들(즉 경제민주화론자들)은 재벌-대기업 규제가 영세자영업 보호를 위해서도 가장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재벌 빵집 논란과 대형마트 골목상권 침식 논란에서 볼 수 있듯이, 빵집과 통닭집, 피자집과 같은 골목 상권에 대자본이 마구잡이로 진입하는 것은 법률로 막아 규제해야 한다. 신용카드 대기업의 수수료 횡포도 규제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영세자영업종에서의 무시무시한 과당 경쟁을 막을 수 없다. 불공정 경쟁(따라서 공정한 시장질서의 확립)도 중요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과당 경쟁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1998년 이후 만성화 되어 지금도 상시적으로 계속되는 대기업과 은행, 금융권 등에서의 대규모 명예퇴직과 정리해고는 불가항력적인 운명적 힘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명백하게 1998년 이후 대기업과 은행, 금융회사들의 기업지배구조 및 경영원리가 미국 월스트리트 형의 단기수익성 제일주의, 현금흐름(cash flow) 및 자기자본 수익률(ROE) 제일주의로 재편되면서 일어난 일이다. 1년 안에 매출 및 수익 증대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업부와 종업원을 바로 퇴출, 퇴직시키는 일은 97년 이전에는 생소한 일이었는데, 미국식 회계기준과 수익기준이 모든 대기업들의 경영에 전면화된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 그것은 흔해빠진 일이 되었다. 이 모든 일이 ‘경제민주화’라는 아름다운 이름 하에 일어났다.

 

   
 정승일 박사

경제민주화는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

경제민주주의는 반드시 필요하다. 민주주의 즉 민(people)이 주인이 되는 통치 원리는 정치 및 국가 영역만이 아니라 경제 영역에서도 관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경제체제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이고, 민(民)이 아닌 자본과 시장이 주인인 체제이다. 과연 자본과 시장이 지배하는 이 체제를 5대 재벌 또는 30대 재벌을 규제하여 그 계열사 숫자를 줄이고, 재벌 총수들의 범법 행위를 엄단한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을까? 그렇게 하면 민이 지배하는 새로운 경제 체제로 바꿀 수 있을까? 지난 민주 정부의 경험을 보면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오히려 거꾸로, 주식투자 펀드들, 재테크 세력, 금융자산가 등 국내외 금융자본의 힘은 엄청나게 커졌는데 반하여 서민들과 노동자들, 빈민들의 처지는 크게 악화되었다. 경제 민주화가 아니라 경제 독재화의 길을 간 것이다.

앞에서 말한 50대의 변절(?)로 되돌아 가보자.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그들의 살림살이는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유린되었다. 경제민주화의 이면은 대규모의 기업구조조정이었고, 재벌개혁 및 재벌해체와 함께 대규모의 계열분리, 해외매각, 인수합병, 사업재편, 부채축소 등의 사태가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이 일어났고 그 와중에서 명퇴, 정리해고 당한 당시 40대, 50대 사람들에게 우리 사회는 '사오정'이라는 이름도 붙여줬다. 당시 30대였던 386 세대는 경제 민주화와 재벌 개혁에 열광했다. 기업의 인력 및 사업 구조조정과 함께 진행된 인사제도 재편(팀제 도입)과 임금 제도 재편(성과주의 및 미국식 연봉제 도입) 등에 앞장서면서 미국식 기업 문화를 도입하는데 열심이었던 것도 386 세대였다. 그 '경제 민주화' 과정에서 당시 40대, 50대였던 인물들은 '사오정'으로 낙인찍혀 쓸쓸히 퇴출당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이번 선거에서 이제 50~60대에 접어든 된 왕년의 '사오정'이 자신들의 살림살이를 망가뜨린 민주주의 및 경제민주화에 정치적으로 복수한다.

50-60대 인구의 비중 확대를 고려할 때, 앞으로 50-60대의 정치적 지지가 없다면 민주주의가 전진하기 힘들다. 그런데 그들의 바람은 소박하다. 20-30대에 비해 더 불안하고 더 빈곤한 자신들의 살림살이도 풍요롭고 여유로우며 안정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 바램을 학자들은 ‘실질적 자유’(형식적·절차적 자유가 아닌)라고 말한다. 그에 반해 지금까지 진보 정치권이 주장해온 민주주의와 경제민주화는 여전히 구자유주의의 패러다임에 머무르고 있다. 즉 실질적 자유가 아닌 형식적·절차적 자유에 불과하다.

구자유주의로는 5년 뒤에도 희망이 없다. 지금부터라도 구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민주주의 즉 실질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자유, 그것을 위한 새로운 경제민주주의를 이야기하여야 한다. 20-30대만이 아니라 40대와 50-60대까지 모든 세대에서 지지받는 ‘밥 먹여주는 민주주의’를 이야기하여야 한다. 그리고 모든 세대, 모든 국민들이 골고루 풍요롭고 여유로울 수 있는 살림살이 경제에 대한 해답은 구자유주의 또는 개혁적(진보적) 자유주의가 아니라 사회민주주의, 특히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에 있다고 나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