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민주주의의 3대 가치. 자유와 평등 그리고 연대
사회적 연대라는 공동체 윤리는 미래를 향한 희망

 

※ 이 기사는 2013년 2월, '사회민주주의의 가치'라는 제목으로 3회에 걸쳐 작성한 글(사회민주주의센터 게재)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조원희 국민대 경제학과 교수

조원희 (국민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가치란 가장 소중하고 귀중하게 여기는 것이고 동시에 우리가 지향하는 궁극적 목표를 말한다. 사회민주주의는 지금까지 인류가 이룩한 모든 긍정적 성과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또한 앞으로 그것들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하여, 자유와 평등, 연대의 3대 가치와 그리고 그것의 확장으로서의 생태, 평화를 포함한 5대 가치를 가장 소중한 가치 또는 궁극적 달성 목표이자 행동 원칙으로 삼는다.

먼저 자유와 평등, 연대는 각각 그 자체만으로도 양보할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것들이다. 동시에 이들 3대 가치는 각각 서로 다른 가치가 없으면 쓰러진다는 의미에서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보완적 가치들이다. 우리는 이들 3대 가치가 현 사회뿐 아니라 더 높은 단계의 미래 사회에서도 유효하다고 본다. 또한 사회민주주의는 수단과 목적을 분리하지 않으며 특히 5대 가치에 있어 이 원칙을 고수한다. 이점에서 사회민주주의는 자신들의 최종 목표 달성을 위해 수단과 목적, 과정과 최종목표를 분리하면서 목적을 위해 자의적으로 수단을 구사하거나 과정을 무시하는 혁명주의적 구좌파와 구분된다.


자유와 평등

무엇보다 먼저 사회민주주의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일차적 가치는 자유와 평등이다. 물론 자유와 평등은 사회민주주의의 주된 경쟁 상대인 자유주의 사상의 핵심적 가치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유주의가 약속하는 자유와 평등은 자본주의 성립기에 봉건적 신분제의 족쇄로부터 개인성을 해방시킨 위대한 가치이다. 특히 자유라는 가치는 모든 형태의 정치적, 경제적 독재에 맞서는 거부와 투쟁의 근거이며 이것은 지금도 유효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식민지 지배와 군사독재 체제에 맞서 민족의 해방과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온 위대한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정치적 자유는 가장 소중한 가치였다. 자유주의와 마찬가지로 사회민주주의는 정치적 자유를 소중히 여긴다.

또한 사회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존엄성을 <절대적으로> 소중한 가치로 여기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개개인은 자유롭고 평등하다고 믿는다. 따라서 사회민주주의는 신분과 인종, 성별, 종교, 신념 등에 따른 어떠한 정치적 차별도 거부하며, 또한 어떤 이유에서건 개인의 기본권에 대한 제한을 거부한다.

그런데 자유주의가 말하는 자유와 평등은 정치적·법률적, 형식적·절차적인 것에 머무른다. 경제사회 생활의 관점에서 볼 때 자유주의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자유란 사유재산권 및 시장 영업 활동의 자유를 의미하며, 그 평등이란 사유재산권 행사 및 경쟁적 시장 참여기회의 평등을 의미할 뿐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경제사회 생활의 현실에서 자유와 평등은 서로 대립되어 나타난다. 왜냐하면 자본주의가 낳는 부와 소득의 불평등은 자유롭고 부유한 소수와 그렇지 못한 다수를 나누며, 그 결과 <평등 없는 자유>를 낳기 때문이다.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적 경제사회 생활의 현실에서 나타나는 이와 같은 평등 없는 자유와 대다수 개인에 있어 실질적 부자유와 실질적 불평등에 주목하며, 따라서 정치적·형식적 자유와 평등을 넘어 ‘실질적 자유’와 ‘실질적 평등’을 구현하고자 한다. 실질적 자유란 개개인들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자신의 인간적 잠재력을 경제사회적 이유로 제한받지 않고 구현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또한 실질적 평등이란 형식적인 기회 균등을 넘어 삶을 향유함에 있어 실질적인 경제사회적 평등을 뜻한다. 예컨대 모든 개개인이 적절한 주택과 함께 좋은 교육 기회를 가지며, 병에 걸렸을 때 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고, 또한 노후에도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성을 유지하는 생활 유지가 불가능하다면, 그리고 안전한 노동 환경에서 적절한 시간 동안 노동할 수 있는 일자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 때의 자유란 공허한 껍데기에 불과하다. 따라서 사회민주주의는 실질적 자유, 실질적 평등을 구현하기 위하여 자본과 시장을 사회적, 민주공화적으로 통제하고 관리하는 복지국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그렇지만 사회민주주의는 기존의 공산주의에서 나타났던 <자유 없는 평등>에도 반대한다. 과거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체제에서 개개인들은 평등한 경제사회적 삶을 살았으되 자유로운 삶은 아니었다. 그들은 정치적으로 자유롭지 못했으며 경제사회적 삶에 있어서도 풍요롭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지 못했다. 사회민주주의는 이와 같은 <자유 없는 평등>은 개인과 개성을 부정하는 것, 인간의 존엄성을 부정하는 것이므로 거부한다. 이처럼 사회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마찬가지로 <자유 없는 평등>을 거부하는데, 그렇지만 자유주의와 달리 <평등 없는 자유>를 낳는 자본주의적 경제사회 질서에도 반대한다.

 


연대

자유, 평등과 함께 사회민주주의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세 번째의 고귀한 가치는 사회적 연대이다. 여기서 연대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각자의 이익 증진을 위해 이기적 개인들이 서로 결합하는 ‘이익의 공동체’ 즉 게젤샤프트(Gesellschaft)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개념이다. 예컨대 자본주의 기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주식회사는 이기적인 주식소유자들이 각자의 투자수익 향상을 위한 영리적 관점에서 상호 결합함으로써 만들어지는데, 이런 것을 사회적 연대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회민주주의가 말하는 사회적 연대란 각 개개인들이 타인들과 동일한 사회적 경제적 삶의 기반 위에 서 있음을 인식하고 그러한 사회경제적 삶을 개선 또는 타파하기 위해 비영리적 관점에서 서로 소통하고 손을 잡는 ‘우애의 공동체’ 즉 게마인샤프트(Gemeinschaft)를 말한다. 자본주의적 시장과 기업이 우리의 경제사회 생활 속에서 추방하고 억압해온 ‘공동체와 협동의 정신’, 돈으로 평가할 수 없고 살 수도 없는 ‘소통과 우정’ 등이 바로 연대의 다른 표현이다. ‘돈으로 살 수 없으며’, 그러면서도 무한한 부와 문명을 창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우정과 소통, 공동체의 가치이며, 따라서 사회적 연대는 미래 사회를 열어 나가는 핵심적 원동력이다.

사회적 연대만이 자유와 평등을 더 높은 차원으로, 즉 실질적 자유와 실질적 평등으로 이끌어 올릴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연대의 정신만이 자유와 평등의 실질적인 내용에 결정적 도약을 가능케 한다. 이들 3자 간의 관계를 보자.
 

   
'게마인샤프트(Gemeinschaft)'는 독일의 사회학자 페르디난트 퇴니에스가 '이익사회'(게젤샤프트)에 대치하여 사용한 사회의 범주개념이다. 게마인샤프트란, 선택의지와 상대되는 본질의지에 입각한 사람들의 목적적·전인격적(全人格的) 결합체를 의미한다. 주로 공동사회(共同社會)라고 번역된다

자유 없는 연대를 넘어서

먼저 <자유 없는 연대>가 있을 수 있는데, 이것은 자유로운 개인을 부정한 연대, 가짜 연대?甄? 물론 자유 없는 연대가 종종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과거 민족의 자유가 유린된 식민지 시대의 경우 우리 민족 전체의 자유가 유린된 결과 개개인의 자유의 공간 역시 존재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이때는 민족의 해방을 위한 투쟁의 연대 속에서 자유 없는 연대, 집단주의적 연대가 ‘잠정적으로’ 정당화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자유로운 개인들 간의 연대만이 진정으로 진보적이다.

우리나라에는 지금도 전통적인 연대가 있다. 먼저 학연과 지연 등으로 뭉친 연고주의적 연대가 있는데, 이것은 폐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패거리 문화를 구현하고 있을 뿐,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의 공동체와는 거리가 멀다. 또한 가족주의 즉 가족적 연대가 있는데, 그렇지만 가족주의는 오늘날 사회적 연대의 발전을 가로막는 최대의 걸림돌이다. 이는 악순환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는데 사회적 연대와 그리고 이에 기초한 보편적 복지가 없으니 개개인은 가족에 기대게 되고 그러니 다시금 사회적 연대에 소극적이거나 무지하게 된다. 이런 악순환을 깨는 방법은 개개인, 특히 가정 내의 여성의 역할, 즉 아동양육과 노인, 환자 돌봄 기능을 복지국가의 틀 속에서 해결함으로써 사회적 연대의 틀을 확보하고 이로써 여성을 개인으로서 자유롭게 하여 경제활동에 자유롭게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사회적 연대를 통해서만 진정한 자유가 확보되는 것이 이 예에서 알 수 있다.

사회민주주의는 가족을 중시하되 가족주의에 반대한다. 예컨대, 자본주의 경제의 본원적 불확실성 속에서 각 개인의 노후 보장을 그의 자식이 보장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내 자식만이 아니라 이 땅의 모든 미래 세대가 잘 양육되고 교육되었을 때, 그리하여 훌륭하게 성장한 그들이 생산적인 직업 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나와 노인 세대 전체를 위해 소득의 일정 부분을 기꺼이 세금과 사회보장비로 내 놓을 때 나의 노후는 보장된다. 이처럼 사회민주주의는 가족을 넘어서는 ‘세대간 연대’의 가치를 중시한다. 결론적으로 오직 연대를 통해서만 노동자와 여성, 아동과 노인 등 다양한 사회적 존재로서의 개인은 실질적 자유를 확보할 수 있다.

이렇듯 사회민주주의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회적 연대는 모든 형태의 연고주의와 가족주의, 집단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일체의 연고주의와 집단주의, 가족주의에 반대하며, 진정으로 자유로운 개인들 간의 공생의 연대를 구축하려 한다.

 


연대 없는 자유는 껍데기 자유

다른 한편, 반대로 <연대 없는 자유>가 있을 수 있다. 자유주의자들의 대다수는 사회적 연대가 ‘자유에 대한 침해’라고 말하면서 ‘연대 없는 자유’를 소중하게 여긴다. 그들은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으로의 단결과 단체행동, 진보세력의 정치적 결집, 연대적 복지국가의 시장 경제 개입 등이 ‘자유로운’ 시장의 효율성을 침해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적을수록 더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개별적으로 분산된 개인 또는 노동자는 오로지 자본과 시장의 막강한 힘과 구속력 앞에 굴복할 자유밖에 없다. 따라서 자유주의가 말하는 자유는 인간의 자유, 개인의 자유가 아니라 실제로는 자본의 자유, 시장의 자유를 의미할 따름이다. 사회민주주의는 인간과 개인의 ‘실질적’ 자유와 평등을 위해서는 반드시 자본과 시장을 ‘실질적으로’ 통제해야 하며, 그 통제를 위한 기구가 바로 노동조합과 협동조합, 시민운동, 복지국가 같은 사회적 연대체라고 본다.

우리는 내 일자리만 지키고 내 월급만 지키겠다고 발버둥치는 이기적인 개인과 조직들의 필사적 노력이 결국은 모두의 일자리와 소득을 불안하게 만드는 역설적인 모습을 목도하고 있다. 이처럼 시장에서 경쟁하는 파편화된 개인으로서는 - 아무리 그것이 ‘공정한 경쟁’이라 할지라도 - 임금과 노동조건의 개선은 불가능하며, 시장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을 위해서는 노동조합과 협동조합, 복지국가라는 연대적 결집체가 필요하다.

 


실질적인 기회의 평등은 결과의 평등을 일정하게 포함

연대와 평등의 관계는 어떠한가? 연대는 평등을 구현해주며 반대로 평등은 연대를 공고하게 한다. 서로를 강화하는 관계인 것이다. 이 사실은 다음을 통해 알 수 있다.

먼저 <연대 없는 평등>은 불가능하다. 자유주의자들은 ‘공정한 시장질서’가 달성되면 ‘절차적 공정성’과 함께 ‘기회의 평등’이 달성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정의롭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정의’와 ‘공정’은 ‘사회적’ 정의(사회정의)가 아니라 시장의 정의 즉 ‘시장적’ 정의(시장정의)에 불과할 따름이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그것이 제아무리 공정하다 할지라도 지속적으로 개인간, 기업간 차이를 낳으며 승리자와 패배자를 가른다. 즉 아무리 공정한 시장질서와 함께 기회의 평등이 잘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불가피하게 결과의 불평등, 즉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낳는다. 그런데 자유주의자들은 공정한 경쟁질서, 공정한 거래 질서에 따른 시장 결과의 불평등에 대해서는 모두가 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것을 ‘정의’롭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결과의 불평등 즉 심각한 소득격차의 연속적 누적은 역으로 기회의 평등과 경쟁의 공정성(절차적 공정성)마저 껍데기로 만들어 버린다. 예컨대 가난한 집의 아이들이 어떻게 부유한 집 아이들과 동등하고 공정한 교육 기회 하에서 경쟁할 수 있다는 건가? 어떻게 그런 경제사회 질서를 ‘사회 정의’의 이름으로 정당화 할 수 있단 말인가?

사회민주주의는, 사회적 연대라는 가치관에 따라, 소득의 불평등, 결과의 불평등을 일정 한도 내에서 사회적으로 통제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편적 복지라는 사회적 연대, 이를 통한 소득의 재분배를 통해서만이 ‘실질적인 기회의 평등’이 실현될 수 있으며 따라서 ‘실질적인 평등’이 이룩될 수 있다. 이렇듯 사회민주주의는 공정 시장, 공정 경쟁이라는 가치 즉 ‘정의로운 시장’이라는 가치보다 사회적 연대라는 가치 즉 ‘정의로운 사회’라는 가치를 훨씬 더 소중하게 여긴다.

물론 자유주의의 진보적 일파 즉 진보적 자유주의는 공정한 시장질서와 보편적 복지를 동시에 추진하면 되지 않느냐고, 즉 ‘정의로운 시장’과 ‘정의로운 사회’를 동시에 구현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얼핏 들으면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진보적 자유주의가 그 ‘행동에 있어’ 여전히 소중히 여기면서 정치적으로 우선시하는 것은 보편적 복지가 아닌 공정한 시장 거래 질서의 구축이다. 게다가 진보적 자유주의가 궁극적 이상으로 꿈꾸는 복지 역시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꿈꾸는 높은 수준의 보편적 복지가 아니며, 그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 불과하다. 그들의 입장에서 복지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게 되면 시장의 합리적 작동을 방해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시장 경쟁이 아닌 조직화된 연대성

다른 한편, <평등 없는 연대>도 어렵다. 우리의 경제 현실에서는 자본의 분할 지배 전략에 말려들어 노동자들 내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에 임금 및 사내복지의 불평등이 극심하며 동일노동-동일임금이라는 기본적인 평등 원칙이 부정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반복과 갈등이 심하며 양자 간의 사회적 연대가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제기되는 의문은 이렇듯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평등성이 부정된 결과 양자간 연대가 부정되고 그것이 다시 양자간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이다.

자유주의자들은 마치 노동시장에 공정한 시장질서, 경쟁적 시장질서가 구축되면 동일노동-동일 임금이라는 결과의 평등 원칙이 구현될 것처럼 말하면서 대기업 정규직의 특권적 이익을 보호해온 노동조합의 독점력을 약화시키면 노동 시장에서 공정한 완전 경쟁 원칙이 구현되며 그 결과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에 동일노동-동일임금이라는 평등의 원칙이 구현된다고 말한다. 즉 노동자간 연대의 약화가 노동자간 평등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정규직의 노동 조건마저 비정규직의 그것으로 하향 평준화시키는 나쁜 평등화이다.

사회민주주의는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을 구현하면서도 하향 평등화가 아니라 상향 평등화를 이루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공정한 시장 경쟁 원리가 아니라 비정규직과 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모두 하나로 포괄하는 보편적인 중앙집중적 산별노조와 그 단체교섭이며, 그것에 대한 복지국가의 입법적, 행정적 지원이라고 본다. 노동시장에 있어 사회적 연대의 조직화 즉 중앙집중적 산별 단체교섭의 조직화와 그것을 지원하는 보편적 복지 국가의 정치적 구축 없이, 상향 평등화 방향의 동일노동-동일임금을 달성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사회적 연대의 부재가 불평등을 낳고 그것이 다시 사회적 연대를 더욱 부재하게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길은 바로 사회적 연대를 질적으로 비역적으로 강화시키는 것이며, 이것이 연대와 평등의 상호 선순환을 실현시키는 올바른 길이다.

또한 장애인, 성적 소수자와 같은 사회의 약자들이 사회적 발언권을 얻어 사회적 권리를 확보하는 유일한 방법 또한 사회적 연대의 조직화이다. 이렇듯 사회공동체적 연대와 그 연대의 다양한 조직화는 실질적인 평등을 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수단이다.

 


사회적 연대라는 공동체 윤리는 미래를 향한 희망

사회민주주의는 연대의 원칙을 경제를 넘어 모든 사회 영역으로 확장하고자 한다. 가령 우리는 내 자식만 잘되라고 밀어주는 이기적인 학력 경쟁 속에서 자라나는 청소년 세대의 영혼이 승자건 패자건 모두 다 같이 황폐화되어 신음하는 모습을 목도하고 있다. 자유주의자들은 연대보다 중요한 것이 경쟁의 공정성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오로지 경쟁 원칙만이 지배하게 된다면, 그것이 아무리 공정한 경쟁이라 할지라도, 개인과 사회는 황폐해지며 자유와 평등은 껍데기만 남게 된다는 점을 중시한다.

경쟁이 아닌 연대의 공간이 확장될수록 이웃에 대한 연민과 친구와의 우정, 인간적 여유와 정서적 고양과 같은 소중한 개인적 인격성의 가치들이 만개할 수 있다. 시장 원리와 경쟁 원리에 밀려 추방되어 버린 사회적 연대의 가치, 공공성의 가치를 다시 부활시키지 않는다면, 자유주의자들이 주창하는 ‘자유와 평등으로 충만한 개인들’은 허깨비에 지나지 않다.
사회적 연대가 사회민주주의의 영혼이라는 사실은 자본주의의 인간성 파괴 경향을 인식하면 더욱 분명해 진다. 자본주의 자체는 돈과 이윤의 가치 이외에는 그 어떤 다른 가치도 내포하고 있지 않다. 자본의 본질은 맹목적으로 더 많은 돈을 벌어 더 큰 이윤을 얻는 것을 향한 무한 질주 그 자체이며, 이러한 무한 질주 경쟁을 모든 개개인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자본의 법칙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이러한 경쟁적 질주를 공정한 절차와 공정한 참여 기회 평등·공평의 원칙을 가지고 진행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공정한 경쟁의 결과로 승자와 패자, 결과의 불평등이 발생하더라도 그것은 개인과 기업의 자기수익 및 자기책임 원칙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신자유주의 시대에 자유주의자들은 유난히 자기 수익과 자기 책임 원칙을 강조한다.

그렇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여 대규모의 투자 실패와 손실이 발생하자 자본은 자유주의자들이 금과옥조처럼 떠받들어온 자기 책임 원칙을 순식간에 내던지고 국가공동체가 책임지고 나서서 자본을 구제해주어야 한다는 ‘사회주의의 원리’에 호소하였다. 이처럼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도덕의 아노미적 자기분열 그 자체이다. 아무리 자유주의가 그것을 공정한 시장 질서, 공정 경쟁, 자기 책임 원칙 같은 것으로 위장하더라도 이러한 도덕적 자기분열은 숨길 수 없다. 보수적이건 진보적이건, 자유주의의 가치와 정치적 실천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현실 속에서 자본이 인간을 자본의 무한 팽창 욕구에 봉사하도록 만드는데 기여할 뿐이다. 현재의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보듯이 자유주의는 경제를 파탄시킬 뿐 아니라 사회와 도덕 윤리를 파탄나게 하는 자기분열적 사상이며 정치 운동이다.

사회 연대를 통한 사회공동체 의식의 발전, 사회 연대라는 새로운 윤리 의식의 발전이 없다면, 사람들은 자기분열적인 자유주의 윤리에 환멸을 느끼면서 그것을 내던지고 민족과 국가, 인종, 가족을 신성시하는 복고적 공동체주의 윤리로 후퇴한다. 이것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에서 다시 강화되고 있는 보수적 민족주의와 쇼비니즘, 네오-나치즘, 인종주의, 가족주의의 물결이다. 따라서 자유주의의 자기분열적 도덕윤리로부터 사회와 개인을 보호하고, 민족주의와 인종주의, 가족주의로의 회귀가 아닌 진정 자유롭고 평등한 공동체성을 함양하기 위해서도 연대의 정신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미래 세계를 향한 희망 또한 사회공동체적 연대의 정신에서만 찾을 수 있다.

 

생태

사회민주주의는 환경과 생태를 중시한다. 이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모든 위대한 철학과 종교의 기본 가르침이기도 하며 또한 사회민주주의의 뿌리인 고전적 사회주의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인간과 자연의 화해와 공존은 인간과 인간의 화해만큼이나 소중한 것이며, 경제적 재화만이 아니라 자연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행복은 풍요로운 삶, 자유로운 삶의 필수적 요소이다.

그런 만큼 부유한 자들만이 아니라 모든 개개인들이 지구적 자연이 제공하는 생태 환경의 행복을 누릴 자유와 권리를 가져야 한다. 따라서 사회민주주의는 만민평등의 생태환경적 권리가 실질적 자유와 실질적 평등의 필수적 요소임을 인식한다. 그리고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무지막지한 이윤 추구로 인하여, 그리고 여타의 이해관계로 인하여, 이렇듯 모든 개개인의 자유와 평등에 필수적인 생태적 자연이 파괴되는 것을 비판하며,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는 생태적 위기를 강조하면서, 자유와 평등, 연대 같은 다른 인간적 가치들을 소홀히 하면서 오로지 생태만을 중시하는 생태 지상주의 또는 생태적 역사 종말론을 주창하는 모든 종류의 생태 근본주의에 반대한다.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에 내포된 생산력 및 기술력 지상주의와 소비 지상주의, 환경균형 파괴경향을 심히 우려하고 비판하지만, 그것을 극복할 인류의 잠재력을 확신한다. 생태적 위기의 극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적극적 관심과 대응이지 종말론적 공포의 극대화와 주어진 자본주의 현실로부터의 파괴적인 과거지향적 단절이 아니다.

 


평화와 통일

사회민주주의는 역사 발전의 현 단계에서 사회적 연대는 전세계를 단위로 실현되기 힘들며 아직은 민족과 국민국가 단위로 사회공동체가 존재함을 인식한다. 그러나 우리는 민족주의와 쇼비니즘 즉 일국 이기주의를 반대하며, 타국과 타민족이 우리와 동등한 권리를 가졌을 인정하고, 또한 일국이 강압적 수단으로 타국을 착취·지배하는 것을 결단코 반대한다.

타국과의 평화공존 및 호혜선린의 원칙은 자유와 평등, 연대라는 사회민주주의의 3대 가치를 국제적 차원으로 확장할 때 필연적으로 도출된다. 또한 평화공존과 호혜선린의 원칙은 우리나라가 주변의 모든 초강대국들과 중립적이며 동일한 우호친선 관계를 갖는 것이 점증하는 국제적 긴장과 갈등의 조건에서 우리가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단코 평화주의자임을 선언한다.

우리는 남북한의 특수관계를 인정하되, 북한의 국가적 실체를 인정하고, 그 체제가 어떠하건 그것을 정당한 대화 상대로서 인정한다. 성급한 통일 논의보다는 남북한 간의 대화와 신뢰회복, 교류 협력을 중시하며, 그 무엇보다 평화체제를 정착시키는 것을 우선적인 목표로 한다.

이처럼 사회민주주의는 통일이 그 모든 다른 가치에 우선한다는 입장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통일 없는 남한만의 문명·복지 공동체의 건설은 불완전함을 인식하면서 남북한간의 평화적이고 자발적인 통일을 지향한다. 그 이유는 첫째, 분단과 정치군사적 대립은 그 자체 평화의 부정이며 게다가 그러한 대립 상황이 지속되는 한 한반도가 주변 강대국에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모든 국가와 우호친선을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둘째, 남북한 간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호혜협력과 상호교류는 남북한 모두에서 선진적인 복지국가, 문명국가를 만들어 나가는데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남북한이 서로 평화공존과 함께 경제적, 사회적으로 서로 왕래하고 교류·교역하는 과정 그 자체가 남북한 각자에 있어 경제성장과 사회발전을 촉진할 것이며, 또한 남북간의 문화·예술, 과학·기술 등의 정신적 교류는 남북 국민들간의 상호이해와 통합을 진전시킨다.

따라서 우리는 남북한 간의 통일이란 어느 날 급작스럽게 일어나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기보다는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연속적 과정으로 이해한다. 이는 우리가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를 미래의 목표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 연속적 과정으로 인식하는 것과 동일한 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