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중심 모순 r>g를 이해하는 방법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 2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2)
 
 자본주의를 설명하는 세 가지 공식, r>g α=r×β, β=s/g
 
 
홍준기(프로이트 라깡 정신분석연구소 소장)
 
 

r : 자본수익률

g : (경제)성장률
r>g : 느리게 성장하는 경제에서는 자본수익률이 성장률보다 더 커지면서 부의 분배에서 양극화 위험이 더 커진다는 것을 말하는 부등식
  
 
 
지금까지 필자는 피케티 이론이 갖는 정치경제적, 복지국가적 의미에 대해 전반적으로 논의했다. 이제 이하에서는 본격적으로 피케티 이론의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을 이끌어가는 세 가지 공식(r>g, α=r×β, β=s/g)을 제시한 바 있다. 이것이 피케티 이론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이것을 통해 그는 무엇을 설명하고자 하는가?
 
 
자본주의의 중심적 모순 : r>g
 
들어가는 말 :  r>g 공식에 대하여

논의가 진행되면서 더욱 상세히 설명하겠지만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자신의 이론을 이끌어가는 세 가지 가장 중요한 공식 혹은 법칙을 제시한다. 피케티는 과도하게 수학적 문제에 집착하는 주류경제학자들을 비판하며 자신은 가능한 한 수식을 사용하지 않고 논의를 진행하지만 어쩔 수 없이최소한의 공식 혹은 수식을 제시한다. 이는 21세기 자본에서 개진된 피케티 이론 전체를 파악하는 데 중심적 역할을 하는 공식이므로 약간의 수고를 들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선 언급할 것은 피케티가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모순”(689)이라고 부르는 r>g 공식이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제1기본법칙(α=r×β)과 제2기본법칙(β=s/g)이 있다. r>g 공식과 나머지 두 개의 자본주의 기본법칙은 각각 무엇을 의미하며 이 세계의 공식은 서로 어떤 연관성을 맺고 있는가? 먼저 r>g부터 논의를 시작하자. 1근본법칙, 2근본법칙의 의미, 그리고 그것들과 r>g 공식과의 관계 등에 관한 문제는 논의를 진행해나가면서 계속적으로 설명할 것이다.

 
우선 그는 서장에서 r>g 공식을 소개한다. 피케티가 이 공식이 어떤 면에서는 21세기 자본의 논리를 전체적으로 요약한다라고 말할 만큼 이것은 피케티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여기에서 r은 자본수익률, g(경제)성장률을 의미한다. 앞에서 자본소유에서의 불평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언급한 바 있지만 피케티에게 r>g라는 부등식은 느리게 성장하는 경제에서는 자본수익률이 성장률보다 더 커지면서 부의 분배에서 양극화 위험이 더 커진다는 것을 말한다.
 
r>g 공식은 우리나라 번역본에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모순(689)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영어로는 “the central contradiction of capitalism”이다. 그러므로 직역하면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모순’이라기 보다는 자본주의의 중심적 모순이 될 것이다. 앞에서도 필자는 피케티 이론에 대한 비판들을 소개하고 그 비판들이 갖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언급해왔다(장하성 비판). 여기에서도 r>g 공식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설명하기에 앞서 피케티의 이 공식에 대한 주류경제학자들의 비판에 대해 먼저 언급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피케티의 새 논문: 도대체 피케티가 어떤 오류를 인정했다는 것인가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제시하는 여러 공식(법칙) 또는 논제 중 r>g 공식이 가장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고, 많은 비판자들이 r>g 공식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내보였다. 그리하여 피케티는 특히 r>g 공식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다시 정리하고 설명하는 논문, 분배 문제를 경제학의 중심으로 되돌리기: ‘21세기 자본에 관한 고찰을 발표했다. 피케티가 발표한 이 새 논문으로부터 언급함으로써 논의를 시작해보자.
 
그동안 피케티 이론에 대한 여러 가지 비판들이 있었지만 피케티가 자본주의의 중심적 모순이라고 부른 이 공식에 비판이 가장 많이 집중되었다. 대표적인 논자가 맨큐(N. G. Mankiw)이다.비판의 핵심은 그래. r>g가 맞다. 그런데 그게 어때서?라는 맨큐의 논문 제목이 말하듯이, 이 공식은 불평등과 아무 상관이 없는 공허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r>g라는 공식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하게 성립하는 공식이며 따라서 그것은 불평등 그 자체를 설명할 수 있는 공식이 아니다. 하지만 피케티는 이 공식을 가지고 터무니없이 불평등을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커다란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맨큐 그리고 조금 후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맨큐와 유사한 반론을 제기하는 그 밖의 다른 비판자들이 피케티를 정확하게 논박한 것일까? 우선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피케티 자신도 21세기 자본에서 r>g 공식만으로 불평등의 현실을 다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피케티는 이 공식과 함께 21세기 자본에서 많은 다른 법칙들과 이론적, 실증적 논의들을 제시했으며, 본서 1에서 언급했듯이 무엇보다도 공공정책과 제도들과의 연관성속에서 이 공식이 갖는 의미를 상세히 설명하고자 노력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지만 비판가들은 이러한 문맥을 빼버리고 피케티가 오직 r>g 공식만 가지고 불평등 동학을 모두 설명하고자 했다고 비판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r>g 공식에 대한 논의를 처음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 이 모든 문제를 한 번에 다 설명할 수 없으므로 논의를 진행해 나가는 가운데 피케티의 그 공식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단계적으로 설명할 것이다.
 
먼저 살펴볼 것은 언론들의 반응이다. 피케티가 앞에서 언급한 새 논문, ‘21세기 자본에 관한 고찰을 발표했을 때 2015311일자 <헤럴드경제>는 피케티가 자신의 중대한 오류를 인정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
 
       “21세기자본의 저자인 토마 피케티 파리 경제대 교수가 책의 오류를 인정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8(현지시간) 피케티 교수가 자신의 책에서 계산실수를 범했고, 새로 발간될 책에서는 여기서 비롯된 오류를 수정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 또한 피케티가 원 자료를 인용하는 과정에서 계산 실수를 범했고 의도적 자료 가공도 있었다며 이론에 오류를 지적했다. (.....) 그는 저서에서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을 항상 앞서기 때문에 부의 불평등은 갈수록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해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우선 이 보도는 사실 관계 자체를 왜곡하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피케티가 의도적으로 자료 가공을 했다는 파이낸셜타임즈의 비판은 오히려 그 비판자의 계산실수가 드러나면서 피케티의 압승으로 끝난 논쟁인데, <헤럴드 경제>는 아주 오래 전 이야기를 다시 꺼내면서 심지어 사실을왜곡해 보도한다. 그리고 이 기사는 피케티가 자신의 오류를 인정했다고 보도하고 있지만 도대체 무슨 오류를 인정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도대체 피케티가 자신의 새 논문에서 무슨 오류를 인정했다는 것인가? 이미 언급했듯이 그 핵심 내용은 r>g 공식이 불평등을 설명할 수 있는 공식이 아니라는 것이며 피케티도 그것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편파적인 기사가 자주 회자되고 있으므로 독자들은 본의 아니게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그러므로 논의를 시작하는 이 자리에서 피케티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미리 언급하고 지나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피케티의 새 논문의 내용은 무엇인가?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불평등의 현실을 다룸에 있어 r>g 공식만으로 이를 모두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 이미 21세기 자본에서도 불평등 현실을 분석하기 위해 r>g 공식뿐만 아니라 다양한 관점을 동시에 활용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보수적 경제학자나 언론의 주장과 달리 피케티는 r>g 공식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를 보이기 위해 새 논문에서 피케티는 자본수익률과 성장률의 차이(r-g)가 조금만 벌어져도 그 차이가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는 사실, 21세기 자본, 10에서 이미 언급한 사실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키고 있다.
 
또한 보수 언론이나 이론가들이 자신의 오류를 인정했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피케티는 자신의 새 논문에서 자신은 21세기 자본에서 결코 경제주의적 관점을 취한 적이 없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오히려 피케티 비판자들이 21세기 자본을 편협하게, r>g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자 하는 책으로 잘못 읽고 있다고 반비판한다. ‘21세기 자본에 관한 고찰에서 인용한 다음 구절을 읽어보자.
 
        “참으로, 역사적 서사(historical narrative)의 중요한 결론은 그 책 서장에 다음과 같이 진술되어 있다. 부와 소득의 불평등과 관련해 어떠한 경제적 결정론도 조심해야 한다. (....) 부의 분배의 역사는 항상 대단히 정치적인 것이었고 따라서 순수하게 경제적인 메커니즘으로 환원될 수 없다. 부의 분배의 역사는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행위자들이 정의로운 것, 그리고 정의롭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를 바라보는 방식에 의해, 그리고 이들 행위자들의 상대적 힘과 그것으로부터 귀결되는 집단적 선택에 의해 형성된다.'”
 
아마도‘21세기 자본에 대한 고찰을 읽지 않았어도 21세기 자본을 꼼꼼히 읽은 독자라면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일 것이다. 필자 역시 본서의 원고의 대부분을 썼을 때 아직 피케티의 새 논문을 읽지 않은 상태였지만, 피케티가 r>g 공식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자 했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어쨌든 21세기 자본‘21세기 자본에 대한 고찰에서 피케티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앞으로 계속해서 이 책에서 설명해나갈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문제가 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부분은 자본주의의 중심적 모순(the central contradiction of capitalism)”이라는 피케티의 표현이다. 맨큐는 위에 언급한 논문에서 피케티의 이 표현을 특별히 강조하며 피케티를 비판한다. 사실 이러한 비판을 행한 사람은 맨큐만이 아니다. 피케티는 새 논문에서 맨큐나 그 밖의 비판자들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으면서, 21세기 자본의 내용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충 설명한다. 그리고 너무 r>g 공식에만 매달리지 말고 21세기 자본전체를 살펴볼 것을 권한다.
 
그 책을 전체적으로 독서한다면 자신(피케티)이 결코 r>g 공식만으로 불평등을 설명하고자 하지 않았다는 것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반박한다. 어쨌든 피케티가 자신의 용어상의 표현(‘자본주의의 중심적 모순이라는 표현)이 너무 강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단지 용어 표현에 관한 문제일 뿐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21세기 자본의 논지가 오류였음을 인정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 나는 r>g20세기에 소득과 부의 변화를 고찰하기 위한, 그리고 21세기에 소득과 부의 불평등 경로를 예측하는 유일한 혹은 심지어 기본적인 수단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 게다가 나는 r>g을 노동소득에서의 불평등 증가를 논의하기 위한 좋은 도구라고 믿지 않는다.”
 
이 인용문의 요지는 r>g 공식으로 설명 가능한 역사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이며, 그 이후의 역사와 21세기(미래)는 이 공식과 더불어 다양한 요인들, 정치적 행위, 제도, 공공정책 등 다양한 외부적 요인들을 동시에 고려할 때에만 설명 또는 예측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야기했으므로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그러나 피케티가 r>g라는 공식이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이하에서 이 공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자.
 
어떻게 성장률이 낮은 사회에서 높은 자본수익률을 유지할 수 있는가

"느리게 성장하는 경제에서 자본수익률이 성장률보다 더 커지면서(r>g) 부의 분배에서 불평등 정도가 심화되는 이유는, 느리게 성장하는 경제에서는 이미 축적된 과거의 부가 현재의 자본 소득에 비해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내용을 상기해보자. r>g라는 부등식은 느리게 성장하는 경제에서는 자본수익률이 성장률보다 더 커지면서 부의 분배에서 불평등 정도가 심화된다는 것을 말하는 공식이다.
 
우선 자본수익률과 성장률의 역사적 추이에 대해 살펴보자. 피케티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자본수익률은 2~3% 이하로 떨어진 적은 없고 일반적으로 (세전) 4~5%를 유지했다(429). 도표 10.9에서 볼 수 있듯이 긴 역사적 과정에서 아주 오랫동안 세계는 거의 정체상태에 있었고 급속히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일반적으로 자본수익률은 4~5%를 유지해 왔으며 3.5~4%의 성장률을 보인 20세기 후반에 자본수익률과 성장률의 차이는 크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피케티는 향후 장기적 성장률이 1.5%에서 안정될 것으로 보며(282) 자본수익률은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 결과로 4~5%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한다 
 
도표 10.9 
 
자본수익률과 성장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피케티가 제시하는 핵심적 논제는 우리들의 추측 혹은 직관과는 상당히 다를 수 있는 내용이다. 그에 따르면 오히려 성장률이 아주 낮은 사회에서 자본수익률이 성장률보다 훨씬 더 높을 수 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경제성장이 정체되면 자본수익률도 자연스럽게 감소하지 않을까?
 
이것이 경제학자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일반적인 생각일 텐데 피케티는 이러한 추측과는 반대되는 과감한 주장을 전개한다.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피케티에 따르면 19세기 프랑스는 성장률이 1%이고 자본수익률이 5%인 사회였다. 그리고 이 시기 프랑스의 자본총액이 연간 국민소득의 7배라고 하자. 예컨대 이는 당시 연간 국민소득이 100이라면 그 당시 존재하는 자본총액(부의 크기)700이라는 것을 의미한다.이러한 사회에서에서는 자본소득의 5분의 4를 소비하고 5분의 1만 저축해도, 이전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자본은 성장률(1%)만큼 증가한다(421).
 
왜 그러할까? 이 당시 자본소유자들이 갖고 있는 자본총액이 700이므로 5%의 자본수익률을 적용하면 연간 자본소득자가 얻는 총자본소득은 35이다. 그 중 5분의 17을 저축한다면 총자본의 크기는 700에서 707로 상승하게 된다. 당시 사회에 존재하는 자본총액이 700이므로 자본증가분은 성장률과 같은 비율인 1%가 되는 것이다.
 
한편 성장률이 3%이고 자본수익률이 5%인 사회를 생각해보자. 이 사회에서 자본소득의 5분의 4를 소비하고 5분의 1을 저축하는 경우, 자본소유자들이 가지고 있는(혹은 물려받은) 자본은 1% 증가하므로 성장률 3%에 미치지 못한다. 이 두 간단한 예의 비교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전자의 경우 즉 느리게 성장하는 경제에서는 이미 축적된 과거의 부가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자의 경우에 자본은 성장률과 비교할 때 후자의 경우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더 빨리 증가했기 때문이다. 저성장 사회에서는 자본소유자가 자신의 새로운 저축을 조금만 투입해도 새로운 부의 총량을 꾸준히 그리고 크게 늘릴 수 있다.
 
부를 소유하고 있지 못한 노동자와 달리 자본소유자는 자본소득을 바탕으로 특권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다. 특히 성장률이 낮은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임금수준이 낮으므로 자본을 소유하지 않은 계층의 사람들은 소득이 없거나 적어서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에서도 자본소유자 계급은 높은 자본수익률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계 이외에 다른 일에 몰두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귀족 계급이 학문과 정치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이는 현대에서도 마찬가지로 타당한 이야기다. 생계비를 버느라고 시간이 없다면 공부는 물론 취미 생활도 할 수 없으며 정치에도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
 
베블렌이 유한계급론에서 말했듯이 노동자는 종종 자신의 계급 이익에 반하는 투표를 한다. 어떻게 그러한 일이 가능할까? 생계유지를 위해 노동자는 노동에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자신은 물론 사회 문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없고, 따라서 정치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많다. 뚜렷한 정치의식을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정치에 개입하고 참여해 그것을 바꿀 수 있는 시간과 정신적 여유가 없다. 반면 자본소유자는 자본소득을 바탕으로 정치나 학문, 유희, 취미 등 다양한 활동에 종사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경제력에 바탕을 둔 이러한 여유가 자본소유자가 노동자에 비해 자신의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를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인 힘이 되는 것이다.
 
r>g라는 공식에 대한 피케티의 설명(저성장, 높은 자본수익률)에 대해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통상적으로 다음과 같은 반론을 제기한다. 경제성장률이 낮은 국가에서 어떻게 자본수익률이 높게 유지될 수 있는가? 경제성장이 둔화된다는 것은 자본수익률도 낮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가? 자본축적이 진행될수록 자본의 한계생산성은 체감하고 따라서 자본수익률도 감소하지 않겠는가?
 
잘 알려져 있듯이 한계생산성 이론은 신고전파 주류경제학을 지탱해주는 주춧돌과도 같은 이론이다. 이에 따르면 각 생산요소(자본과 노동)는 생산에 기여한 만큼 보수를 받게 된다. 신고전파 경제학의 한계생산성 이론에 따르면 자본수익률은 자본이 생산에 기여한 몫이고 임금은 노동이 생산에 기여한 몫이다. 예를 들면 1억을 투자해 연간 500만원만큼 상품 생산을 증가시킬 수 있다면 이때 1억 원의 투자에 대한 자본의 한계생산성은 5%이다. 완전경쟁 상황에서라면 자본수익률도 5%로 결정된다.
 
그런데 어떤 사업가가 투자자에게 5% 이하의 자본수익률만 보장해준다고 하면 아무도 이 사업에 투자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어떤 사업에서 5% 이상의 자본수익률을 얻을 수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 경우 수익률이 평균 수익률보다 유리하므로 이 사업에 투자자가 몰릴 것이다. 하지만 완전경쟁시장에서는 투자자들이 쇄도해 자본수익률이 결국 하락하게 될 것이며 마침내 자본수익률은 5%에서 균형을 이루게 된다.
 
또한 한계생산성 체감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한계생산성 체감의 법칙은 생산요소의 투입을 늘려나가면 그 요소의 한계생산성은 궁극적으로 감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에서 자본량이 많아지면 자본의 한계생산성은 체감하며 따라서 자본이 생산 혹은 소득에 기여한 보수인 자본수익률도 체감한다는 것이다. 보수적인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법칙의 권위에 의존해 피케티가 r>g 공식으로써 말하고자 하는 정치경제학적 논제(자본축적이 심화되고 경제성장률이 낮아져도 자본수익률이 높게 유지될 수 있다)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하지만 피케티는 오히려 규모가 큰 자본은 수익률이 더 높다는 현상에 주목하며 한계생산성 이론에 맞선다.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신고전학파의 가장 핵심적 가정이라고 할 수 있는 한계생산성 이론은 비현실적인 허구적 가정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정보를 공유하며 자원의 이동이 자유로운 완전경쟁시장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정보를 독점한 권력과 결탁하고 있는 대자본가는 오히려 대규모의 자본을 바탕으로 더 큰 협상력과 정보 등을 가질 수 있고 따라서 평균 수익률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 자본이 다양한 형태로 활용되고 있는 복잡한 현실 경제에서 자본의 한계생산성은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의 주장처럼 명확하게 산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대규모의 자본은 금융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가장 수익률이 높은 곳에 투자할 수 있다. 자본시장은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이 가정하듯이 한계생산성 원리 또는 한계생산성 체감의 법칙이 철저히 지켜지는 완벽한 시장이 아니다. 특히 대규모 금융자본은 그 규모가 커질수록 정보와 권력을 더욱 독점할 수 있으므로 오히려 평균수익률보다 더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신고전파 주류 경제학이 이야기하는 한계생산성 이론에 대한 피케티의 비판에 관해서는 조금 후에 다시 언급하기로 하자. 우선적으로 r>g 공식과 관련해 피케티가 강조하는 것은 축적된 부와 상속재산이다.
r>g라는 공식은, 앞의 예에서 보았듯이, 자본수익률이 성장률을 크게 웃돌 때는 논리적으로 상속재산이 생산이나 소득보다 더 빨리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려받은 재산이 많은 사람의 경우에는 자본에서 얻는 소득의 일부만 저축을 해도 성장률보다 더 빠른 속도로 자본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주장은 물려받은 자본이 많은 사람은 경제성장률에 비해 훨씬 높은 자본수익률을 낼 수 있다는 주장을 함축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상속재산이 노동으로 평생 동안 쌓은 부를 압도할 수 있다(39). 저성장 사회에서는 이미 축적된 부와 그것의 상속이 이미 존재하는 경제적 불평등을 더욱 심각하게 만든다는 것이 r>g라는 부등식으로 피케티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적 내용 중 하나이다. 저성장 사회에서는 rg가 조금만 차이가 나도 커다란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해를 피하기 위해 언급하고 지나가야 할 것이 있다. 피케티가 현재 유럽과 미국에 (물론 그러한 징후가 강하게 등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완전한 세습자본주의 사회가 도래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하면, r>g 공식은 rg의 차이가 클수록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것을 말한다. 저성장 사회에서 자본수익률이 높아질수록 노동소득은 감소하고 자본소득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고성장 사회가 저성장 사회보다 불평등이 완화되는 이유는 고성장 사회에서 rg의 격차가 저성장 사회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아지기 때문이다.
 
저성장 사회에서는 자본소유자가 조금만 저축해도 자신의 부의 총량을 급속도로 늘릴 수 있다.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r>g 공식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는 가운데 자본의 증가와 저축률, 그리고 성장률 등의 개념이 등장한다. 저축률과 성장률, 그리고 자본량 증가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라는 문제를 보다 이론적으로 해명하기 위해서는 피케티가 말하는 자본주의의 제2기본법칙(β=s/g), 그리고 그것과 관련된 다양한 논의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마치 피케티가 r>g 법칙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자 한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β는 자본/소득 비율인데 β는 저축률(s)을 성장률(g)로 나눈 값으로 정의된다. 따라서 r>g 공식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본주의의 제2 기본법칙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후에 상세히 설명할 것이다.
 
(계속)